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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심훈 | 토지 | 3,000원 구매
0 0 297 10 0 14 2018-11-24
지리하던 장마가 들었다. 한 주일동안이나 퍼붓던 비는 서 울 한복판을 지글지글 끓이던 더위와 후터분한 티끌을 한바 탕 훌부시어 내었다. 얕은 하늘에 칡넝쿨 같이 서리었던 구 름장은 선들바람에 쫓기어 바닷속의 풀잎처럼 흐느적 기다 가는 스러지는 저녁놀에 물이 들어서 산호가지 같이 빨갛게 타는 상싶다. 남대문통 씨멘트를 깔아논 길바닥은 걸레질을 쳐논것처럼 윤이 흘렀다. "에 좀 찬찬이 가자꾸나 아직두 한시간이나 남았는데……" 세로 약칠한 흰 구두뿌리를 맵시있게 제기면서 걸어가던 동무의 소매를 끌어다녔다. "벌써 표는 죄다 팔렸다는데 어서 따러와요" 앞서 가던 여자는 팔뚝시계를 들여다 보며 사뭇 달음박질 을 한다. 잠자리 날개같이 다려입은 불란사 깨끼..

소설이순신

이광수 | 토지 | 3,000원 구매
0 0 317 20 0 41 2018-11-24
아무리 전라 좌수영이 남쪽 끝이라 하여도 이월이면 아직도 춥다. 굴강(병선을 들여 매는 선창) 안에 있는 물은 잔잔해서 마치 봄빛을 보이는 것 같지마는 굴강 밖에 만나서면 파란 바닷물이 사물거리는 물결에서는 찬 기운이 돌았다. 굴강 안에는 대맹선(大猛船) 두 척, 중맹선 육척, 소맹선(小猛船) 이척, 무군 소맹선(小猛船) 칠척, 도 한 십 칠척이 배가 매여 있다. 그러나 명색은 갖추었어도 배들은 반 넘어 썩고 이름 모를 조개들만 제 세상인 듯이 배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먹느라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법으로 말하면 병선은 새로 지은 지 팔년 만에 한 번 중수해야 하고 그로부터 육 년 만에 개조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육 년 만에는 낡은 배는 내어 버리고 새 배를 지..

봄의 서곡

심훈 | 토지 | 2,000원 구매
0 0 325 13 0 41 2018-11-24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읍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읍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 수2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가에 관한 이론이나 예투의 겸사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책상 머리에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쓰다듬어 보자니 이목이 반듯한 놈은 거의 한 수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병신 자식이기 때문에 차마 버리기 어렵고 솔직한 내 마음의 결정3인지라 지구4에게 하소연이나 해 보고 싶은 서글픈 충동으로 누더기를 기워서 조각보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30이면 선다는데 나는..

낙조

김사량 | 토지 | 1,000원 구매
0 0 682 25 0 28 2018-11-21
원래가 퍽 사람을 그리워하여, 사람 없이는 하루 한시라도 못 견디는 고독한 인간이다. 무턱대고 사람을 그리워한다. 두 번만 만나면 나는 어깨를 치고 허허 웃고 또 심지어 그이가 뚱뚱보라면 꾹꾹 그 배를 찌르고야 만다. 그래 한번은 뚱뚱보인 고등관(高等官)을 성내우고 말았다. 실로 말이지 내가 알기는 대신급(大臣級)에서부터 토역군(土役軍)에 이르기까지이다. 더욱이 그 부인네들과는 안면이 깊다. 그건 내가 '걸레장사'라는, 바로 이 고장 말로 하면 구주야이기 때문이다. 아니 구주야는 내 생활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어엿한 화가이다. 그림공부하는 사나이다. 그러나 고등관의 욕을 얻어먹은 뒤부터는 일체 관리들과는 교제를 끊었다. 아니 거래를 끊었다는 말이다. 나는 나를 멸..

노마만리

김사량 | 토지 | 1,000원 구매
0 0 695 23 0 70 2018-11-21
노마만리(駑馬萬里) 이 조그마한 기록은 필자가 중국을 향하여 조국을 떠난 지 바로 일개월 만에 적 일본군의 봉쇄선과 유격지구를 넘어 우리 조선의용군의 근거지인 화북 태항산중(華北 太行山中) 으로 들어온 날까지의 노상기(路上記)와 또 여기 들어온 뒤 의 생활록, 견문, 소감, 이런 것을 적어 놓은 것이다. 말하자 면 두서없는 붓끝의 산필(散筆)이다. 하나 이 기록은 언제까지 끝날 일인지, 혹은 어느때에 중 단될 일인지 필자 역시 예기치 못하는 바이다. 그것은 우리 의용군이 잔폭(殘暴)한 적군을 쳐 물리치며 압록강을 건너 장백산을 타고 넘어 우리나라 서울로 진군하는 <장정기>(長 征記)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것이로되 그날이 언제라고 앞서 기약할 수 없는 동시에 장차 우리..

의문의 소녀

김명순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39 8 0 44 2018-11-21
이광수가 추천한 최초의 여류작가 김명순. 1917년 월간 종합지 <청춘> 현상 작품 모집에 발표한 단편소설 <의문의 소녀>와 같은 시기의 단편 <동경>. -------------------------------------------------------------- 평양 대동강 동쪽 해안을 이 리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라는 동리가 있다. 그 동리는 그리 작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이 결코 비루하지도 않으며 업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범네’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여쁘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팔구 세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이 동리로 온 것은 두어 해 전이니 황진사라는 육십여 세 되는 젊지 않은 백발옹과..

바람과 노래

김명순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68 26 0 50 2018-11-21
김명순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시인이며, 언론인, 영화배우, 연극배우. 호는 탄실(彈實). 우리에게는 김탄실로 더 많이 알려져있다. 이광수, 김일엽, 나혜석, 허정숙 등과 함께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길, 길 주욱 벋은 길 음향과 색채의 양안(兩岸)을 건너 주욱 벋은 길. 길 길 감도는 길 산 넘어 들 지나 굽이굽이 감도는 길. 길 길 작은 길 벽과 벽 사이에 담과 담 사이에 작은 길 작은 길. 길 길 유현경(幽玄境)의 길 서로 아는 영혼이 해방되어 만나는 유현경의 길 머리 위의 길.

지하실의 달

오일도 | 토지 | 1,000원 구매
0 0 812 42 0 28 2018-11-21
지하실의 달 1977년 간행된 오일도의 유고시집이다. 높이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가슴 한복판을 누른다. 내 무슨 죄로 두 손 가슴에 얹고 반듯이 침대에 누워 집행시간을 기다리느뇨. 그러나 모두 우습다. 그러나 모두 무無다 눈만 살아 벌레 먹은 내 육체를 내려볼 때에 인생은 결국 동물의 한 현상이어니. 백년도 그렇고······ 천년도 그렇고······ 내 한가지 희원希願은 내 간 후 뉘우칠 것도 거리낄 것도 아무것도 없게 하라. ..

계집하인

나도향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20 3 0 12 2018-11-21
박영식은 관청 사무를 끝내고서 집에 돌아왔다. 얼굴빛이 조금 가무스름한데 노란빛이 돌며, 멀리 세워 놓고 보면 두 눈이 쑥 들어 간 것처럼 보이도록 눈 가장자리가 가무스름 한데 푸른빛이 섞이었다. 어디로 보든지 호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삼십 내외의 청년이다. 문에 들어선 주인을 본 아내는 웃었는지 말았는지 눈으로 인사를 하고 모자와 웃옷을 받아서 의걸이에 걸며, “오늘 어째 이렇게 일찍 나오셨소?” 하며 조금 꼬집어 뜯는 듯한 수작을 농담 비슷이 꺼낸다. 영식은 칼라를 떼면서 체경 앞에 서서, “이르긴 무엇이 일러, 시간대로 나왔는데” 하고 피곤한 듯이 약간 상을 찌푸렸다. “누가 퇴사 시간을 몰라서 하는 말요?” ”그..

역사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80 3 0 21 2018-11-21
채만식 - 총기 좋은 할머니 ‘노구할미’가 졸고 앉았다. 상전(桑田)이 벽해(碧海) 되는 것을 보고 입에 물었던 대추씨 하나를 배앝았다. 그러고는 또 졸고 앉았다. 벽해가 상전이 되는 것을 보고, 입에 물었던 대추씨 하나를 배앝았다. 그렇게 졸고 앉았다는 상전이 벽해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고 할 적마다 대추씨 하나씩을 배앝고 배앝고 하기를 오래도록 하였다. 누가 ‘노구할미’더러 나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노구할미’는 말없이 손을 들어 대추씨로 이루어진 큰 산을 가리키더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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