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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순신

이광수 장편소설

아무리 전라 좌수영이 남쪽 끝이라 하여도 이월이면 아직도 춥다. 굴강(병선을 들여 매는 선창) 안에 있는 물은 잔잔해서 마치 봄빛을 보이는 것 같지마는 굴강 밖에 만나서면 파란 바닷물이 사물거리는 물결에서는 찬 기운이 돌았다. 굴강 안에는 대맹선(大猛船) 두 척, 중맹선 육척, 소맹선(小猛船) 이척, 무군 소맹선(小猛船) 칠척, 도 한 십 칠척이 배가 매여 있다. 그러나 명색은 갖추었어도 배들은 반 넘어 썩고 이름 모를 조개들만 제 세상인 듯이 배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먹느라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법으로 말하면 병선은 새로 지은 지 팔년 만에 한 번 중수해야 하고 그로부터 육 년 만에 개조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육 년 만에는 낡은 배는 내어 버리고 새 배를 지어야 하건마는 차차 법이 해이하여 일..
아무리 전라 좌수영이 남쪽 끝이라 하여도 이월이면 아직도 춥다.

굴강(병선을 들여 매는 선창) 안에 있는 물은 잔잔해서 마치 봄빛을 보이는 것 같지마는 굴강 밖에 만나서면 파란 바닷물이 사물거리는 물결에서는 찬 기운이 돌았다.

굴강 안에는 대맹선(大猛船) 두 척, 중맹선 육척, 소맹선(小猛船) 이척, 무군 소맹선(小猛船) 칠척, 도 한 십 칠척이 배가 매여 있다. 그러나 명색은 갖추었어도 배들은 반 넘어 썩고 이름 모를 조개들만 제 세상인 듯이 배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파먹느라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법으로 말하면 병선은 새로 지은 지 팔년 만에 한 번 중수해야 하고 그로부터 육 년 만에 개조해야 하고 또 그로부터 육 년 만에는 낡은 배는 내어 버리고 새 배를 지어야 하건마는 차차 법이 해이하여 일년 이차 뱃바닥을 굽는 것(배를 매여달고 그 밑에 불을 피워 뱃바닥 창널을 그슬리는 것)조차 벌제위명(伐齊爲名)이 되고 말았다.

금년(신묘년) 정월, 새 수사(水使) 이순신(李舜臣)이 도임함으로부터 배와 군사는 전부 엄중한 점고를 받아서 쓸 것 못 쓸 것을 가리어 놓게 되었다.

수군 오백 팔십인 중에 정말 쓸 만한 것은 삼백인도 못되고 그 나머지 이백 팔십여 명 중에 백여 명은 나이 육십이 넘어 군사 노릇 못할 늙은이들이요, 그 밖에 일백 팔십여 명은 이름뿐이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이러하니 병기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저 굴강 안에 있는 썩은 배에 들러붙은 사람들은 신관 사또 도임 후에 배를 고치는 목수들이다. 「쓱쓱...」하는 톱질 소리, 「떵떵떵떵......」하는 못 박는 소리, 뱃바닥 굽는 화롯불 연기.

그리고 저 바로 복 파정(伏波亭앞 넓은 마당에 가로놓인 괴물이야말로 새 수사 이순신이 몸소 도편수가 되어서 짓는 맨 처음 거북선이다.
이광수(李光洙)
1892년 2월 1일 ~ 1950년 10월 25일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였다.
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1906년 3월 다이세중학[大城中學]에 입학.
190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백금학보(白金學報)』 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1910년 『소년』에 신체시 「우리 영웅」을 발표하였고,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에 평론 「문학의 가치」와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였다.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 생활,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다
1915년 9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하였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 등의 단편 소설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1917년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으나 1918년 폐병이 재발하였다.
1921년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에「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1924년 「재생」, 1927년 「마의태자」, 1928년 「단종애사」, 1930년 「혁명가의 아내」, 1931년 「이순신」, 1932년 「흙」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安昌浩 )와 함께 투옥, 1938년 11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1947년 5월 『도산 안창호』, 6월 『꿈』을 출간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8월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7월 납북되었다가 10월 25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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