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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서곡

심훈의 시와 수필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읍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읍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 수2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가에 관한 이론이나 예투의 겸사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책상 머리에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쓰다듬어 보자니 이목이 반듯한 놈은 거의 한 수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병신 자식이기 때문에 차마 버리기 어렵고 솔직한 내 마음의 결정3인지라 지구4에게 하소연이나 해 보고 싶은 서글픈 충동으로 누더기를 기워서 조각보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30이면 선다는데 나는 아직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
나는 쓰기를 위해서 시를 써 본 적이 없읍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 보지 아니하였읍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 수2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 보다가 이 보잘것없는 시가집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가에 관한 이론이나 예투의 겸사는 늘어놓지 않습니다마는 막상 책상 머리에 어중이떠중이 모인 것들을 쓰다듬어 보자니 이목이 반듯한 놈은 거의 한 수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병신 자식이기 때문에 차마 버리기 어렵고 솔직한 내 마음의 결정3인지라 지구4에게 하소연이나 해 보고 싶은 서글픈 충동으로 누더기를 기워서 조각보를 만들어 본 것입니다.

30이면 선다는데 나는 아직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30의 마루터기 위에 섰읍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 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체법 걸음발을 타게 되는 날까지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

1932년 9월 가배절 이틑날
당진 향제에서 심 훈
심훈(沈熏)

1901.9.12. ~ 1936.9.16.
소설가·시인·영화인.
본명 심대섭(沈大燮). 본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서울 출생.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17년 이해영(李海暎)과 결혼.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퇴학.
1921년항저우(杭州)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집필활동하며 1924년 이해영과 이혼,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장한몽(長恨夢)」에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
1926년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다.
1930년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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