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결별

지하련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78 5 0 39 2018-11-01
어제 밤 좀 틔각거린 일도 있고 해서 그랬든지 아무튼 일부러 달게 자는 새벽잠을 깨울 멋도 없어 남편은 그냥 새벽 차로 일직암치 관평을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형예(亨禮)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젯밤 다툰 일이다. 하긴 어제밤만 해도 칠원관평은 몸소 가 봐야 하겠다는 둥 무슨 이 사회가 어떠니 협의회가 어떠니 하고 길게 늘어놓은 남편의 이얘기가 그저 좀 지리했을 뿐 별것 없었다면 그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그게 꼭 「이러니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는 것처럼 댓듬 비위에 와서 걸리고 보니 형예로서도 가만이 있을 수 없어 자연 주고받는 말이란 것이 기껏 「남의 일에 분주헌 건 모욕이래요.」 「남의 일이라니 웨 결국 내 일이지.」 이렇..

장미 병들다

이효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34 8 0 28 2018-11-01
싸움이라는 것을 허다하게 보았으나 그렇게도 짧고 어처구니없고 그러면서도 싸움의 진리를 여실하게 드러낸 것은 드물었다. 받고 차고 찢고 고함치고 욕하고 발악하다가 나중에는 피차에 지쳐서 쓰러져 버리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 맞고 넘어지고 항복하고 그뿐이었다. 처음도 뒤도 없이 깨끗하고 선명하여 마치 긴 이야기의 앞뒤를 잘라 버린 필름 몇 토막과도 같이 신선한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 신선한 인상이 마침 영화관을 나와 그 길을 지나던 현보와 남죽 두 사람의 발을 문득 머무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람들 속에 한몫 끼여 섰을 때에는 싸움은 벌써 끝물이었다. 영화관, 음식점, 카페, 매약점 등이 어수선하게 즐비하여 있는 뒷거리 저녁때, 바로 주렴을 드..

소낙비

김유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7 9 0 24 2018-11-01
잎잎이 비를 바라나 오늘도 그렇다. 풀잎은 먼지가 보얗게 나풀거린다. 말뚱한 하늘에는 불더미 같은 해가 눈을 크게 떴다. 땅은 닳아서 뜨거운 김을 턱밑에다 풍긴다. 호미를 옮겨 찍을적마다 무더운 숨을 헉헉 뿜는다. 가물에 조잎은 앤생이다. 가끔 엎드려 김매는 이의 코며 눈퉁이를 찌른다. 호미는 퉁겨지며 쨍 소리를 때때로 낸다. 곳곳이 박힌 돌이다. 예사밭이면 한번 찍어 넘길 걸 서너 번 안하면 흙이 일지 않는다. 콧등에서, 턱에서 땀은 물 흐르듯 떨어지며 호미자루를 적시고 또 흙에 스민다. 그들은 묵묵하였다. 조밭 고랑에 쭉 늘어 박혀서 머리를 숙이고 기어갈뿐이다. 마치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입을 벌리면 땀 한 방울이 더 흐를 것을 염려함이다...

흙의 세례

이익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21 9 0 18 2018-11-01
명호의 아내(明浩) 혜정(慧貞)은 앞마루에서 아침을 먹은 뒤에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멈추고, 방 안을 향하여 “저 좀 보셔요.”하고, 자기 남편을 불렀다. 명호는 담배를 피워 물고 앞에다 신문을 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다가, 혜정의 부르는 소리에 재미스럽게 보던 흥미를 잃어버린 것같이 얼굴에 조금 불쾌한 빛이 나타나 보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허리를 굽혀 앞 미닫이를 소리가 나게 열고는 조금 퉁명스러운 소리로 “웨 그리우?”하였다. 이와 같이 불쾌한 뜻이 섞이어 들리는 “웨 그리우?”하는 대답에 혜정은 어느덧 그 다음에 하려던 말의 흥미를 절반 이상이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저 보셔요.”라 부르기만 하여두고 한참 동안이나 남편의 얼굴을 바라다보..

가애자

김남천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1 7 0 15 2018-11-01
「여기좀 세워주게 저 약방앞에.」 걸칙한 이말에 교통신호에 걸렸다가 금방 새로운 속력을 내여 앞을 다투든 자동차는 급정거를 하야 찍, 찌직-하고 뒤바퀴를 끌면서 보도우에 우뚝섰다. 덜컥 앞으로 한번 밀렸다가 묵직한 몸집이 다시 씨-트에 파묻히우는 순간 「어데랍시요?」 하고 무른것은 핸들을 쥔채얼골을 돌리는 운전수가 아니고 그의옆에 가방을 들고 앉어있는 윤수(允秀)였다. 「응-저기 저 약약방.」 뚱뚱한 몸집을 인바네스로 둘러싼 최충국(崔忠國)씨는 힌수염이섞인 턱수가리를 창문밖으로 향해서 약간 돌리드니 일시에 창밖을 내다보는 윤수와 운전수의 뒤에서 혼자 음칠음칠하고 내릴준비를 한다. 뒤섰든 자동차들이 옆을 스치며 앞으로 다라난다. 이들이탄 자동..

안류정

윤백남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4 13 0 18 2018-11-01
손생원(孫生員)은 난생 처음 어려운 길을 걷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난지 이미 열흘이 지났건만 아직도 강원도(江原道)땅을 벗어 나지 못하였다. 뜨거운 염천이라 한 낮에 걷는 거리란 불과 몇 십리에 지나지 못하는데다가 나날이 기진역진 하여 가는 것이 현저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더구나 길이 험하고 자갈 많은 강원도 산 길은 그에게 여간 고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수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동안에는 장돌림말을 만나면 사정을 간곡히 이야기하고 술값으로 얼마를 주기로 하고 얻어 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엽전 한푼 남아 있지 않게 된 후로는 그것도 할 수 없어서 오로지 과객질을 하여 가며 길을 걸었다. 그것도 상당히 사는 사람의 집을 찾아 들어 가게 되거나..

공포의 기록

이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0 6 0 37 2018-11-01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꿈―꿈이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자는 것이 아니다. 누운 것도 아니다. 앉아서 나는 듣는다. (12월 23일) "언더 더 워치―시계 아래서 말이에요, 파이브 타운스―다섯 개의 동리란 말이지요. 이 청년은 요 세상에서 담배를 제일 좋아합니다 ―― 기다랗게 꾸부러진 파이프에다가 향기가 아주 높은 담배를 피워 빽― 빽― 연기를 풍기고 앉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낙이었답니다." (내야말로 동경 와서 쓸데없이 담배만 늘었지. 울화가 푹― 치밀을 때 저― 폐까지 쭉― 연기나 들이켜지 않고 이 발광할 것 같은 심정을 억제하는 도리가 없다.) "연애를 했어요! 고상한 취미――우아한 성격――이런..

무명초

최서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67 8 0 20 2018-11-01
세상에 나왔다가 겨우 세 살을 먹고 쓰러져 버린 『반도공론』이란 잡지 본사가 종로 네거리 종각 옆에 버티고 서서 이천만 민중의 큰 기대를 받고 있을 때였다. 『반도공론』의 수명은 길지 못하였으나 창간하여서 일 년 동안은 전 조선의 인기를 혼자 차지한 듯이 활기를 띠었었다. 『반도공론』이 그렇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그 잡지의 사장에 주필까지 겸한 이필현씨가 사상가요 문학자로 당대에 명망이 높았던 것이요 또 하나는 『반도공론』은 여느 잡지와 색채가 달라서 조선 민중의 기대에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앞에는 아름다운 이상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주들의 알력으로 한번 경영 곤란에 빠진 뒤..

개척자

이광수 | 토지 | 2,000원 구매
0 0 547 24 0 18 2018-10-30
이광수 장편소설 화학자 김 성재(金性哉)는 피곤한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서 그리 넓지 아니한 실험실 내를 왔다갔다한다. 서향 유리창 으로 들이쏘는 시월 석양빛이 낡은 양장관에 강하게 반사되 어, 좀 피척하고 상기한 성재의 얼굴을 비춘다. 성재는 눈을 감고 뒷짐을 지고 네 걸은쯤 남으로 가다가는 다시 북으로 돌아서고, 혹은 벽을 연(沿)하여 실내를 일주하기도 하더니 방 한복판에 우뚝 서며 동벽에 걸린 팔각종을 본다. 이 종 은 성재가 동경서 고등 공업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오는 길 에 실험실에 걸기 위하여 별택으로 사 온 것인데, 하물로 부치기도 미안히 여겨 꼭 차중이나 선중에 손수 가지고 다 니던 것이다. 모양은 팔각 목종에 불과하지만 시간은 꽤 정 확하기 맞는다. 이래..

여인전기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95 15 0 34 2018-10-05
여인전기(女人戰紀) 채만식이 1944년 10월 5일 부터 1945년 5월 17일까지 每日新報[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목차 1. 季節[계절]의 젊은이들 2. 모시에 어린 追憶[추억] 3. 人生第二關[인생 제 이관] 4. 사랑이 있는 둥우리 5. 바늘 6. 爾靈山(이령산) 7. 새 出發[출발] 8. 危機[위기] 9. 義[의] 10. 落傷[낙상] 11. 試鍊[시련] 12. 不如意[불여의] 13. 血肉[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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