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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매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8 3 0 23 2019-04-20
이런 남매(男妹) 하학종 소리가 때앵땡, 아래층에서 울려 올라온다. 사립으로 된 ××학교 육학년 교실이고, 칠판에는 분필로 커다랗게 다섯 자만 "고결한 정신……" 교편을 뒷짐져 들고 교단 위를 오락가락하던 영섭은, 종소리에 바쁘게 교탁 앞에 가 멈춰서면서, 잠깐 그쳤던 말을 다시 이어, 일단 높은 음성으로 "……그러므로 사람이라껏은……" 하고 대강대강 거두잡아 결론을 맺기 시작한다. "어떠한 경우를 당할지라도 그 고결한 정신 즉 높고 깨끗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단 말야……" 뚝 끊고서 아이들을(한 사십 명이나, 모두 고개를 되들고 앉아 선생의 입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휘휘휘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도 잘 알겠지만…… 저 동양의..

자유종

이해조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60 3 0 10 2019-04-20
자유종 천지간 만물 중에 동물 되기 희한하고, 천만 가지 동물 중에 사람 되기 극난하다. 그같이 희한하고 그같이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이 되어 압제를 받아 자유를 잃게 되면 하늘이 주신 사람의 직분을 지키지 못함이어늘, 하물며 사람 사이에 여자 되어 남자의 압제를 받아 자유를 빼앗기면 어찌 희한코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의 권리를 스스로 버림이 아니라 하리요. 여보, 여러분, 나는 옛날 태평시대에 숙부인(淑夫人)까지 바쳤더니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이 된 신설헌이올시다. 오늘 이매경 씨 생신에 청첩을 인하여 왔더니 마침 홍국란 씨와 강금운 씨와 그 외 여러 귀중하신 부인들이 만좌하셨으니 두어 말씀 하오리다. 이전 같으면 오늘 이러한 잔치에 취하고 배부르면 무슨 걱정..

작은 반역자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8 3 0 28 2019-04-20
작은 반역자(叛逆者) 맹랑한 일이었다. 오늘부터 시험을 보러 가야 할 작은 놈이 간밤에 어디를 가서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느 학기시험이 아니다. 옛날 과거하기보다도 더 힘이 든다는 입학시험을 보아야 할 날에 이 꼬락서니다. 그나마 간밤에만 알았더라도 어디 찾아라도 보았을 것을 아침에서야 떡 그런 소리다. 인수가 안 들어왔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리가 간밤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준의 귀에 들려왔을 때도 그는 꿈을 꾸고 있거니 했던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말소리가 현숙의 음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현숙이가 지금 이 집안에 있을 리가 만무한 노릇이었다. 현숙은 지금쯤 저의 소원대로 평양에서 여판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현숙이가 아이..

적멸

윤기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2 3 0 10 2019-04-20
적멸 "선생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병원엘 일찍 갔다와야겠는데 어쩌나 그동안 심심하셔서… 내 얼핏 다녀올게 혼자 공상이나 하시고 눠 계세요, 네." 명숙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이 머리맡에 놓인 아침에 한금밖에 아니 남았던 물약을 마저 먹어 빈병이 된 걸 집어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철이는 명숙이가 하루 건너 여기서 오리나 되는 병원으로 약을 가지러 가는 때면 아닌 게 아니라 주위가 갑자기 쓸쓸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진종일 꼬박이 누워 있어야 찾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직 명숙이 하나만이 자기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 줄 뿐이니 병으로 앓는 것보다도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이 무한히 그리워 그것이 더 한층, 병들어 누워 약해진 자기의 마음을 속속들이..

전아사

최서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0 3 0 13 2019-04-20
전아사(餞迓辭) 형님, 일부러 먼먼 길에 찾아오셨던 것도 황송하온데 또 이처럼 정다운 글까지 주시니 어떻게 감격하온지 무어라 여쭐 수 없읍니다. 형님은 그저 내가 형님의 말씀을 귀밖으로 듣는 것이 섭섭하게 여기시지만 나는 참말이지 귀밖으로 듣지는 않았읍니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초연히 앉으셔서 수연한 빛을 띠시던 형님의 모양이 아른아른 보이고, 순순히 타이르고 민민히 책망하시던 것이 그저 귓속에 쟁쟁거립니다. "형님, 왜 올라오셨어요?" 지난 여름, 형님께서 서울 오셨을 제 나는 형님을 모시고 성균관 앞 잔솔밭에 나가서 이렇게 여쭈었읍니다.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니? 너 데리러……." 형님의 말씀은 떨리었읍니다. "저를 데려다가는 뭘 하셔요?" 나는 이렇게..

적빈

백신애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5 3 0 7 2019-04-20
적빈 그의 둘째 아들이 매촌(梅村)이라는 산골에 장가를 간 후로는 그를 부를 때 누구든지 ‘매촌댁 늙은이’라고 부른다. ‘늙은이’라는 위에다 ‘매촌댁’이라고 특히 ‘댁’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이 늙은이가 은진 송씨(恩津宋氏)인 고로 송우암(宋尤菴) 선생의 후예라고 그 동리에서 제법 양반 행세를 해오든 집안이 친정으로 척당이 됨으로서의 부득이한 존칭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존칭으로 ‘댁’자를 붙여 준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아무래도 ‘매촌댁 늙은이’하면 의례히 ‘더럽고 불쌍하고 남의 일 해주는 거지보다 더 가난한 늙은이다’하는 멸시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요즈음에 와서는 ‘매촌댁 늙은이’라고 ‘댁’자를 쑥 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졌다. 그래도 늙..

소년은 자란다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8 3 0 21 2019-04-11
소년(少年)은 자란다 서울차가 들어왔다. 조금 있다, 나오는 목이 미어지도록 찻손님이 풀리어 나왔다. 땀 밴 얼굴과 휘감기는 옷이, 짐이랑 모두들 시꺼멓게 기차 연기에 그을리었다. 뚜껑 없는 곳간차와, 찻간 지붕에 올라앉아 오기 때문이었다. 영호는 저도 연기와 석탄재가 쏟아지는 뚜껑 없는 곳간차를 타고, 대전까지는 아무 탈없이 아버지와 함께 오던 일이 생각이 나면서, 누가 감추어 두고 안 주기나 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아버지가 안타깝게 보고 싶었다. 곧 울음이 터지려고 입이 비죽비죽하여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영호는 나오는 찻손님들을 열심히 여새겨 보았다. 찻손님들은 오늘도 역시 한 모양들이었다. 큰 바랑(룩작)을 지고도 손에 짐을 들고 한 사람과, 큰 보따..

조선 농민문학의 기본방향

권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6 2 0 21 2019-04-13
조선 농민문학의 기본방향 민주주의 혁명인 현 단계에 있어 봉건제도 잔재의 소탕이 한 중요한 과업으로 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대개 상식적으로 다 아는 바인데, 봉건제도 잔재 중에는 부인문제, 상민 특히 백정문제, 씨족제도의 유습 문제 등이 있지만 그 중에도 농민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인 것은 또한 누구나 다 시인하는 바이다. 전 인구의 약 8할이나 점령하고 있는 이 농민이 가지고 있는 봉건제도 잔재의 소탕이 없이는 민주주의 혁명이 완성될 수 없으며 또 따라서 다음의 단계로 발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혁명에 일익적 임무를 다하려는 문학운동에 있어서도 봉건제도 잔재 소탕이 역시 한 중요한 과업으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봉건제도 잔재 중에 가장 중요 ..

조각생활 20년기

김복진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9 2 0 56 2019-04-13
조각생활 20년기 일보(一步) 형! 올해 내 나이 마흔이니 뜻을 조각에 두고 지낸 것이 20년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스무살 적에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생 27명 중 24번으로 겨우겨우 치루고 동경을 향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중학 시대에는 학교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우미관, 단성사, 광무대로 허구한 날 돌아다니었는데, 그때의 짝패로 일보(*소설가 함대훈의 호)형에게 소개하여도 좋을 사람은 회월 박영희 형과 고범 이서구 형과 그리고는 비사제(鄙舍弟) 팔봉 김기진 등을 들 수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완전히 우리의 당파는 아니었고 미지근한 동정자들이어서 나처럼 전문적이지는 않았던 만큼 학교 성적도 월등 좋았더랍니다. 중학생으로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경을 ..

문예이론으로서의 신휴머니즘론

임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9 2 0 73 2019-04-13
문예이론(文藝理論)으로서의 신(新) 휴머니즘 론(論) 휴머니즘론이 문예 이론상에 제시한 문제는 아직 단편적인 것밖에 없다. 그렇다고 論者[논자]들이 浩翰[호한]한 문예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오히려 人間中心[인간중심] 文學論[문학론]이란 제아무리 광범한 한도로 발전시켜도 문학의 역사적 발전 법칙이나 창작 과정의 구체성을 해명할 자격을 못가진 일반론이며 부분적, 특수적 요인을 전체의 본질로 과장하는데 불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컨대 휴머니즘 文藝論[문예론]의 추상성, 단편성은 生得的[생득적]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차차로 이야기하거니와 먼저 여태까지 발표된 그들의 諸見解[제견해]에서도 우리는 文藝理論[문예이론]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음미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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