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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

윤기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7 3 0 10 2019-04-20
적멸 "선생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병원엘 일찍 갔다와야겠는데 어쩌나 그동안 심심하셔서… 내 얼핏 다녀올게 혼자 공상이나 하시고 눠 계세요, 네." 명숙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이 머리맡에 놓인 아침에 한금밖에 아니 남았던 물약을 마저 먹어 빈병이 된 걸 집어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철이는 명숙이가 하루 건너 여기서 오리나 되는 병원으로 약을 가지러 가는 때면 아닌 게 아니라 주위가 갑자기 쓸쓸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진종일 꼬박이 누워 있어야 찾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직 명숙이 하나만이 자기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 줄 뿐이니 병으로 앓는 것보다도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이 무한히 그리워 그것이 더 한층, 병들어 누워 약해진 자기의 마음을 속속들이..

전아사

최서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66 3 0 13 2019-04-20
전아사(餞迓辭) 형님, 일부러 먼먼 길에 찾아오셨던 것도 황송하온데 또 이처럼 정다운 글까지 주시니 어떻게 감격하온지 무어라 여쭐 수 없읍니다. 형님은 그저 내가 형님의 말씀을 귀밖으로 듣는 것이 섭섭하게 여기시지만 나는 참말이지 귀밖으로 듣지는 않았읍니다. 지금도 내 눈앞에는 초연히 앉으셔서 수연한 빛을 띠시던 형님의 모양이 아른아른 보이고, 순순히 타이르고 민민히 책망하시던 것이 그저 귓속에 쟁쟁거립니다. "형님, 왜 올라오셨어요?" 지난 여름, 형님께서 서울 오셨을 제 나는 형님을 모시고 성균관 앞 잔솔밭에 나가서 이렇게 여쭈었읍니다.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니? 너 데리러……." 형님의 말씀은 떨리었읍니다. "저를 데려다가는 뭘 하셔요?" 나는 이렇게..

적빈

백신애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2 3 0 7 2019-04-20
적빈 그의 둘째 아들이 매촌(梅村)이라는 산골에 장가를 간 후로는 그를 부를 때 누구든지 ‘매촌댁 늙은이’라고 부른다. ‘늙은이’라는 위에다 ‘매촌댁’이라고 특히 ‘댁’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이 늙은이가 은진 송씨(恩津宋氏)인 고로 송우암(宋尤菴) 선생의 후예라고 그 동리에서 제법 양반 행세를 해오든 집안이 친정으로 척당이 됨으로서의 부득이한 존칭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존칭으로 ‘댁’자를 붙여 준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아무래도 ‘매촌댁 늙은이’하면 의례히 ‘더럽고 불쌍하고 남의 일 해주는 거지보다 더 가난한 늙은이다’하는 멸시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요즈음에 와서는 ‘매촌댁 늙은이’라고 ‘댁’자를 쑥 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졌다. 그래도 늙..

소년은 자란다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1 3 0 21 2019-04-11
소년(少年)은 자란다 서울차가 들어왔다. 조금 있다, 나오는 목이 미어지도록 찻손님이 풀리어 나왔다. 땀 밴 얼굴과 휘감기는 옷이, 짐이랑 모두들 시꺼멓게 기차 연기에 그을리었다. 뚜껑 없는 곳간차와, 찻간 지붕에 올라앉아 오기 때문이었다. 영호는 저도 연기와 석탄재가 쏟아지는 뚜껑 없는 곳간차를 타고, 대전까지는 아무 탈없이 아버지와 함께 오던 일이 생각이 나면서, 누가 감추어 두고 안 주기나 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아버지가 안타깝게 보고 싶었다. 곧 울음이 터지려고 입이 비죽비죽하여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영호는 나오는 찻손님들을 열심히 여새겨 보았다. 찻손님들은 오늘도 역시 한 모양들이었다. 큰 바랑(룩작)을 지고도 손에 짐을 들고 한 사람과, 큰 보따..

조선 농민문학의 기본방향

권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07 2 0 21 2019-04-13
조선 농민문학의 기본방향 민주주의 혁명인 현 단계에 있어 봉건제도 잔재의 소탕이 한 중요한 과업으로 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대개 상식적으로 다 아는 바인데, 봉건제도 잔재 중에는 부인문제, 상민 특히 백정문제, 씨족제도의 유습 문제 등이 있지만 그 중에도 농민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인 것은 또한 누구나 다 시인하는 바이다. 전 인구의 약 8할이나 점령하고 있는 이 농민이 가지고 있는 봉건제도 잔재의 소탕이 없이는 민주주의 혁명이 완성될 수 없으며 또 따라서 다음의 단계로 발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혁명에 일익적 임무를 다하려는 문학운동에 있어서도 봉건제도 잔재 소탕이 역시 한 중요한 과업으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봉건제도 잔재 중에 가장 중요 ..

조각생활 20년기

김복진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2 2 0 56 2019-04-13
조각생활 20년기 일보(一步) 형! 올해 내 나이 마흔이니 뜻을 조각에 두고 지낸 것이 20년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스무살 적에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생 27명 중 24번으로 겨우겨우 치루고 동경을 향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중학 시대에는 학교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우미관, 단성사, 광무대로 허구한 날 돌아다니었는데, 그때의 짝패로 일보(*소설가 함대훈의 호)형에게 소개하여도 좋을 사람은 회월 박영희 형과 고범 이서구 형과 그리고는 비사제(鄙舍弟) 팔봉 김기진 등을 들 수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완전히 우리의 당파는 아니었고 미지근한 동정자들이어서 나처럼 전문적이지는 않았던 만큼 학교 성적도 월등 좋았더랍니다. 중학생으로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경을 ..

문예이론으로서의 신휴머니즘론

임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9 2 0 72 2019-04-13
문예이론(文藝理論)으로서의 신(新) 휴머니즘 론(論) 휴머니즘론이 문예 이론상에 제시한 문제는 아직 단편적인 것밖에 없다. 그렇다고 論者[논자]들이 浩翰[호한]한 문예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오히려 人間中心[인간중심] 文學論[문학론]이란 제아무리 광범한 한도로 발전시켜도 문학의 역사적 발전 법칙이나 창작 과정의 구체성을 해명할 자격을 못가진 일반론이며 부분적, 특수적 요인을 전체의 본질로 과장하는데 불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컨대 휴머니즘 文藝論[문예론]의 추상성, 단편성은 生得的[생득적]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차차로 이야기하거니와 먼저 여태까지 발표된 그들의 諸見解[제견해]에서도 우리는 文藝理論[문예이론]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음미하기에..

여류시단총평

박용철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5 2 0 14 2019-04-13
여류시단총평(女流詩壇總評) 이런 총평식 글을 쓰는 사람이면 흔히는 조선문학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이고, 조선 말이란 살아가는지 죽어가는지로 모를 형편이고, 여류시단이란 대체 어디있는것이냐 부터 캐들어가는 버릇이지마는, 그것은 다만 평소 가슴에 맺힌 불평의 터짐이라고 할것이오, 나는 목전의 목적으로 보아, 모든 구름을 잠깐 걷어버리고 광명에 찬 앞날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조선의현대여자로서 조선말로 쓰는 시에 대해서 몇마디 비평을 써볼까한다. 본시 비평이라 하는 것이 좋은 문학을 읽는 가운데서 얻은 마음의 경험― 자긔의 질거운 문학적경험을 출발점으로 해서 그 경험을 기술해보기도 하고 그 문학자의 정신의 본질을 밝혀보려고도 하는것이 떳떳한 길이오, 그 비평가에게 있어서 보람도..

현대시와 비유

고석규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43 2 0 78 2019-04-16
현대시와 비유 언제나 <방법의 직인>은 눈을 감고 있다. 언어라는 살창 속에는 무명의 그는 불을 때우고 있는 것이다. 스쳐가 버린 꽃이며 나무며 인정이며 하는 것들이 환히 달아오는 살새김에 전율하는 그는 이 고운 꽃이며 고운 나무며 고운 인정을 되살게 하고져 열심히 그의「상상」을 아낀다. 꽃나무, 인정하면은 미지의 꽃 모습과 나무 그림자와 인정의 훈심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있을수록 퍼져가는 무덕진 꽃과 나무와 인정의 느낌으로 변하고야 마는 것이다. 「직인」은 마침내 달아오는 이들 꽃과 나무와 인정이 그가 부르는 꽃과 나무와 인정으로서는 아주 채울 수 없는 나무와 인정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마당가에 머물러 사는「직인의 꽃」과..

현대소설의 귀추

임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7 2 0 42 2019-04-16
현대소설(現代小說)의 귀추(歸趨) 40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서 나는 李泰俊[이태준]씨의 「農軍[농군]」에 이르러 비로소 감동을 가지고 읽을 수가 있었다. 또한 그것뿐으로 다시 예술을 대하는 듯한 감흥을 깨닫지 못한채 全[전]작품을 읽었다. 거의 문단의 기성과 신진이 총동원된 이달 창작에서 내가 얻은 바의 커다란 적막과 조그만 즐거움을 체험한 경로의 피력이 이달 창작의 비평이 될 줄은 나역시 의외의 일이다. 「農軍[농군]」은 泰俊[태준]이 처녀작을 쓸 때부터 가지고 나왔던 어느 세계가 이 작품에 와서 하나의 절정에 도달하였다는 감을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것은 泰俊[태준]의 全[전]작품을 일관한 기본색조요, 連綿[연면]된 전통이리라. 허나 이것을 사상이라고까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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