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희생화

현진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9 3 0 5 2019-04-24
희생화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다리고 사직골 막바지에서 쓸쓸한 가정을 이루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먹던 가을에 돌아가셨다 한다. 어머님께서 시시로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서 목사로 계시던 것이며, 그 열렬한 웅변이 죄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하느님을 믿게 하던 것이며, 자기 몸은 조금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회 일에 진심 갈력(盡心竭力)하던 것을 이야기하신다. 나 보담 사 년 맏이인 누님은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그 맑고 고운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철모르는 나는 그 이야기보담 어머님과 누님이 우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었다. 집안은 넉넉지는 아니하나마 많지 않은 식구라 아버지 생전에 장만하여 주신 몇 섬지기나 추수하는 것으로 기한은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K박사의 연구

김동인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6 3 0 9 2019-04-24
K박사의 연구 "자네 선생은 이즈음 뭘 하나?" 나는 어떤 날 K박사의 조수로 있는 C를 만나서 말끝에 이런 말을 물어보았다. "노신다네." "왜?" "왜라니?" "그새 뭘 연구하고 있었지?" "벌써 그만뒀지." "왜 그만둬?" "말하자면 장난이라네. 하기야 성공했지. 그렇지만 먹어주질 않으니 어쩌나." "먹다니?"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자네 시식회에 안 왔었나?" "시식회?" C의 말은 전부 ‘?’였다. "시식회까지 모를 적에는 자네는 모르는 모양일세그려. 그럼 내 이야기해줄게 웃지 말고 듣게." 이러한 말끝에 C는 K박사의 연구며 그 성공에서 실패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O형의 인간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73 3 0 15 2019-04-24
O형의 인간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는가 봅니다. 이후부터는 당신도 나를‘부양’(당신 말씀대로)할 의무가 없어졌고 나도 당신의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짐을 벗었는가 합니다. 당신도 후련하시겠지마는 나도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렇습니다, O씨. 이 순간부터의 나는 당신의 아내도 아니요, 경남이와 경희 두 남매의 어미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신도 박선희의 의사를 남편이라는 귄위로써 좌우하실 수 없으시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벌써 당신의 아내가 아닌 나이고 보니 당신이 나의 뜻을 무시한 그 어떤 명령에도 좇지 않아도 좋게 된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의 반려로서 손을 맞잡기 전인 그 옛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 아니 A박사의 소개..

용동댁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2 3 0 23 2019-04-18
용동댁(龍洞宅) 열어젖힌 건넌방 앞문 안으로 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용동댁은 한참 바느질이 자지러졌다. 마당에는 중복(中伏)의 한낮 겨운 불볕이 기승으로 내려쪼이고 있다. 폭양에 너울 쓴 호박덩굴의 얼기설기 섶울타리를 덮은 울타리 너머로 중동 가린 앞산이 웃도리만 멀찍이 넘겨다보인다. 바른편으로 마당 귀퉁이에 늙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벌써 잎에는 누른 기운이 돈다. 바람이 깜박 자고 그 숱한 잎사귀가 하나도 까딱도 않는다. 집은 안팎이 텅하니 비어 어디서 바스락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집 뒤의 골목길이고 집 앞의 행길이고 사람 하나 지나가는 기척도 없다. 이웃도 모두 빈집같이 조용만 하다. 보기에도 답답하고, 마치 세상이 가다가 말고서 끄윽 잠겨 움직이지 않는..

용자소전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23 3 0 15 2019-04-19
용자소전(龍子小傳)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는 경구(警句)가 책 속에 씌어 있기나 한 것처럼 초록빛 부사견을 늘인 책장에서 책을 나르기 시작한 후로의 용자는 말이 적어졌다. 원래 말이 적은 아이고 나이보다는 조숙하여서 철학자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용자라 단 하나뿐인 오랍 동생이면서도 일년 가야 서로 이야기하는 일도 없는 우리 남매였다. 나는 용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떠한 취미를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의 책꽂이에서 하이네니 바이런이니 하는 시집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는데 그것이 용자가 빼가는 것인 줄을 알고서야 나는 용자가 문학에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었다―그러나 웬일인지 그런 후로는 원래 말이 적은 아이기는 하지마는 도통..

우연의 기적

윤백남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28 3 0 24 2019-04-19
우연의 기적(奇蹟) 김진사(金進士)는 그 동안 몇해를 두고 아들의 혼담이 거의 결말이 나다가도 종당은 이상스런 소문에 파혼이 되고 말고 되고 말고 해서 인제는 아마도 내 대에 와서 절손이 되고 마는가 보다하고 절망을 한 것이 이번에 뜻밖에 혼담이 어렵지 않게 성립되고 택일날자까지 받아 놓았은즉 의당 기뻐서 날뛸 일이고 혼수만단에 안팎으로 드나들며 수선깨나 늘어 놓을 것인데 실상은 택일 첩지를 받은 날부터 안방에 꽉 들어 백혀 앉아서 무슨 의논인지 부인 곽씨와 수군거리기를 이틀이나 하였다. 이틀이나 하였건만 시원스럽지 못하였던지 눈살을 꽉 찌푸리고는 얼마전부터 병으로 누어 있는 아들의 방에를 하루도 몇 차례 씩 들락 날락 하였다. 아들 경환(景煥)이는 김진사에게는 여벌..

유모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54 3 0 21 2019-04-19
유모(乳母) 유모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나는 유모를 두었다. 아내한테 쪼들리는 것도 쪼들리는 것이려니와 첫째 나 자신이 아이한테 볶여서 못살 지경이었다.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의 소유자였다. 아내 자신은 자기는 그렇게 크게 취급하지도 않는 것을 내가 되게 크게 벌여놔서 자기가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푸우푸우 하지마는 입덧이 났을 때부터 벌써 산파 걱정을 하는 것이라든가, 아직 피가 엉기지도 않았을 때건만 아이가 논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라든가, 당신 친구 부인에 혹 산파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아침마다 한마디씩 주장질을 하는 것이라든가, 그것을 나이 어린 탓으로 돌리면 못 돌릴 것도 없기는 하지마는 어쨌든 사대주의자라는 것만은 면할 도리..

유앵기

계용묵 | 토지 | 1,100원 구매
0 0 383 3 0 65 2019-04-20
유앵기(流鶯記) 앞문보다는 뒷문이 한결 마음에 든다. -끝이 없이 마안하니 내다만 보이는 바다, 그렇게 창망한 바다위에 떠도는 어선, 돛대 끝에 풍긴 바람이 속력을 주었다 당기었다…… 결코 마음에 드는 풍경이 아니다. 어딘지 거기에는 세속적인 정취가 더할 수 없이 담뿍 담기운 듯한 것이 싫다. 무엇이 숨었는지 뒤에는 꿰뚫어볼 수도 없이 빽빽히 둘러선 송림, 오직 그것밖에 바라보이지 않는 뒷문 쪽의 풍경이 턱없이 좋다. 성눌은 마침내 뒷문 곁에 책상을 놓았다. 놓고 나서 마지막 정리인 책상 위까지 정리를 하여 놓은 다음, 뒷산을 대해 마주앉으니 병풍을 두른 듯이 앞을 탁 막아 주는 데 마음이 푹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니 앞은 막혔건만 앞이 터진 바다보다 눈앞은 더 환하..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김사량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6 3 0 27 2019-04-20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우리들은 부산발 신경행 급행 열차 식당 안에서 비루병과 일본술 도쿠리를 지저분히 벌려놓은 양탁(洋卓)을 새에 두고 앉았다. 마침 연말 휴가로 귀향하던 도중 우리는 부산서 서로 만난 것이다. 넷이 모두 대학 동창이요, 또 모두가 같이 동경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광고쟁이 한 사람은 축산 회사원, 한 사람은 조선신문 동경지국 기자, 그리고 나. 우리들은 기실 대학을 나온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 앉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 우리는 만취하기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술에도 담배에도 이야기에도 시진하였다. 그때에 신문 기자는 이 열차에 오를 적마다 머릿속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노..

이단자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3 3 0 16 2019-04-20
이단자(異端者) 네로의 포악성에 준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폈다 하고 있었다. 섰다앉았다 한 것도 몇 번인지 모른다. 일어서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그는 자기 뒤에 수백 명 관중이 앉아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양쪽 팔꿈받이를 짚고 엉거주춤 선 채였었다. 뒤에서 앉으라고 소리를 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야 주저앉던 것이었다. 그러나 잘못했다는 의식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앉으라는 고함소리가 나니까 무섭게 찔금해서 주저앉는 것을 보면 그가 자기의 행동에 대한 판단력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인식한 것은 아닌 것이 네로의 포악성이 도를 더할 적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또 궁둥이를 들먹이던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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