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화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다리고 사직골 막바지에서 쓸쓸한 가정을 이루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먹던 가을에 돌아가셨다 한다. 어머님께서 시시로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서 목사로 계시던 것이며, 그 열렬한 웅변이 죄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하느님을 믿게 하던 것이며, 자기 몸은 조금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회 일에 진심 갈력(盡心竭力)하던 것을 이야기하신다. 나 보담 사 년 맏이인 누님은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그 맑고 고운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철모르는 나는 그 이야기보담 어머님과 누님이 우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었다.
집안은 넉넉지는 아니하나마 많지 않은 식구라 아버지 생전에 장만하여 주신 몇 섬지기나 추수하는 것으로 기한은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감화인지는 모르나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학교에 다니게 하였다. 벌써 십 여 년 전 일이라 누님 공부시키는 데 대하여 별별 비평이 다 많았다. 그러나 어머님은 무슨 까닭에 여자 교육이 필요한 것인 줄은 모르셨겠지마는 아마 여자도 교육시키는 것이 좋은 줄로 아신 것 같다.
현진건(玄鎭健)
1900. 8. 9. ~ 1943. 4. 25.
호는 빙허(憑虛).
1900년 8월 9일 대구 출생.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 후, 1917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 졸업.
1918년 상해 호강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동명』, 『시대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1943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여 문단활동을 시작.
1921년 자전적 소설 「빈처」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타」(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과 장편 「적도」(1933~1934), 「무영탑」(1938)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