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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앵기

계용묵 단편소설

유앵기(流鶯記) 앞문보다는 뒷문이 한결 마음에 든다. -끝이 없이 마안하니 내다만 보이는 바다, 그렇게 창망한 바다위에 떠도는 어선, 돛대 끝에 풍긴 바람이 속력을 주었다 당기었다…… 결코 마음에 드는 풍경이 아니다. 어딘지 거기에는 세속적인 정취가 더할 수 없이 담뿍 담기운 듯한 것이 싫다. 무엇이 숨었는지 뒤에는 꿰뚫어볼 수도 없이 빽빽히 둘러선 송림, 오직 그것밖에 바라보이지 않는 뒷문 쪽의 풍경이 턱없이 좋다. 성눌은 마침내 뒷문 곁에 책상을 놓았다. 놓고 나서 마지막 정리인 책상 위까지 정리를 하여 놓은 다음, 뒷산을 대해 마주앉으니 병풍을 두른 듯이 앞을 탁 막아 주는 데 마음이 푹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니 앞은 막혔건만 앞이 터진 바다보다 눈앞은 더 환하니 내다보이는 것 같다. 역시 끝없는..
유앵기(流鶯記)
앞문보다는 뒷문이 한결 마음에 든다.
-끝이 없이 마안하니 내다만 보이는 바다, 그렇게 창망한 바다위에 떠도는 어선, 돛대 끝에 풍긴 바람이 속력을 주었다 당기었다…… 결코 마음에 드는 풍경이 아니다. 어딘지 거기에는 세속적인 정취가 더할 수 없이 담뿍 담기운 듯한 것이 싫다. 무엇이 숨었는지 뒤에는 꿰뚫어볼 수도 없이 빽빽히 둘러선 송림, 오직 그것밖에 바라보이지 않는 뒷문 쪽의 풍경이 턱없이 좋다.
성눌은 마침내 뒷문 곁에 책상을 놓았다.
놓고 나서 마지막 정리인 책상 위까지 정리를 하여 놓은 다음, 뒷산을 대해 마주앉으니 병풍을 두른 듯이 앞을 탁 막아 주는 데 마음이 푹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니 앞은 막혔건만 앞이 터진 바다보다 눈앞은 더 환하니 내다보이는 것 같다. 역시 끝없는 바다와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속적인 생선을 실은 배가 아니고, 그렇지 않은 그 무엇이 필시 실려 있는 듯한 그러한 배가 오락가락한다.
환상일시 틀림없으나, 이런 것을 사색케 하는 그러한 자리가 성눌에게는 좋았다.
시원하다. 산으로 내려오는 바람도 시원하거니와, 마음도 시원하다. 비록 산경의 초라한 모옥이라 하여도 서울의 여사보다는 기분일지 모르나 마음이 붙는다. 앞문 쪽을 현실이라면 뒷문 쪽은 확실히 초현실적이다. 마음에 부딪치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떠나, 이런 마음의 바다 속에서 산들 어떠리. 신앙도 희망도 생활의 목적도 모두 다 잃고 가장 이상적이어야 할 청춘의 정열까지 마저 식은 생활의 패배자라고 비웃어도 좋다.
성눌은 마음을 풀어 놓고 새 생활이 비롯하는 첫 끼를 이 산 속에서 먹었다.
계용묵(桂鎔默)
1904. 9. 8. ~ 1961년
본명은 하태용(河泰鏞). 본관은 수안(遂安). 평안북도 선천(宣川) 출생.
서당에서 수학하고 삼봉공립보통학교 졸업.
1921년 중동학교, 1922년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에서 수학하고 조선일보사 등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정비석(鄭飛石)과 함께 잡지 『대조(大潮)』를 발행하였고, 1948년김억(金億)과 함께 출판사 수선사(首善社)를 창립.
1925년 5월『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相換)」으로 등단했다.
이후「최서방」(1927)·「인두지주(人頭蜘蛛)」(1928)를 발표, 1935년『조선문단』 제4권 제3호에 「백치(白痴)아다다」를 발표하면서 황금기를 맞는다.
「장벽(障壁)」(1935)·「병풍에 그린 닭이」(1939)·「청춘도(靑春圖)」(1938)·「신기루(蜃氣樓)」(1940) 「별을 헨다」(1946)·「바람은 그냥 불고」(1947) 등을 발표하였다.
작품집으로 단편집 『병풍에 그린 닭이』·『백치아다다』·『별을 헨다』 외에 한 권의 수필집 『상아탑(象牙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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