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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의 인간

이무영 단편소설

O형의 인간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는가 봅니다. 이후부터는 당신도 나를‘부양’(당신 말씀대로)할 의무가 없어졌고 나도 당신의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짐을 벗었는가 합니다. 당신도 후련하시겠지마는 나도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렇습니다, O씨. 이 순간부터의 나는 당신의 아내도 아니요, 경남이와 경희 두 남매의 어미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신도 박선희의 의사를 남편이라는 귄위로써 좌우하실 수 없으시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벌써 당신의 아내가 아닌 나이고 보니 당신이 나의 뜻을 무시한 그 어떤 명령에도 좇지 않아도 좋게 된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의 반려로서 손을 맞잡기 전인 그 옛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 아니 A박사의 소개로 당신과 내가 백합원이라든가 하는 ..
O형의 인간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는가 봅니다. 이후부터는 당신도 나를‘부양’(당신 말씀대로)할 의무가 없어졌고 나도 당신의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짐을 벗었는가 합니다. 당신도 후련하시겠지마는 나도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렇습니다, O씨. 이 순간부터의 나는 당신의 아내도 아니요, 경남이와 경희 두 남매의 어미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신도 박선희의 의사를 남편이라는 귄위로써 좌우하실 수 없으시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벌써 당신의 아내가 아닌 나이고 보니 당신이 나의 뜻을 무시한 그 어떤 명령에도 좇지 않아도 좋게 된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의 반려로서 손을 맞잡기 전인 그 옛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 아니 A박사의 소개로 당신과 내가 백합원이라든가 하는 양식집에서 그 소위 맞선을 보기 전이란다면 당신과 나는 또 그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고 해볼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마는 오늘 이렇게 헤어진 다음에는 다시는 그런 기적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당신도 나도 어린아이가 아닌 바에야 한 번 불에 데어보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겠습니까? 당신과의 부부생활이란다면 나도 이에서 신물이 나지마는 나처럼 되양되양한 계집의 남편 노릇이란다면 당신도 되풀이하고 싶어하지는 않으실 것을 잘 나도 알고 있습니다.
이무영(李無影)
1908년 1월 14일 ~ 1960년 4월 21일
본명은 이갑룡(李甲龍),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필명은 이무영(李無影)·탄금대인(彈琴臺人)·이산(李山)
1908년 1월 14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1916년 4월 충청북도 중원군 사립 용명학교 입학.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1926년 6월 잡지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달순의 출가」로 등단하였다.
1927년 5월 『의지할 곳 없는 청춘』, 1928년 『폐허의 울음』을 발간.
경성부 삼선소학교 교원과 출판사와 잡지사에 근무.
1931년 『동아일보』 희곡 현상공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되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
경기도 시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60년 4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작품으로 「삼년」, 「세기의 딸」, 『무영농민문학선』, 『소설작법』, 「이순신」, 「B녀의 소묘」, 「노농」, 「팔각정이 있는 집」, 「농부전초」, 『해전소설집』, 「벽화」
「달순의 출가」, 「의지할 곳 없는 청춘」, 「폐허의 울음」,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향가」, 「용답(龍沓)」, 「역전(驛前)」, 「정열의 책」, 「세기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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