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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탑

이효석 | 토지 | 3,000원 구매
0 0 328 18 0 7 2019-04-24
푸른탑 물위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봐, 철교야." 강폭이 넓어져 오는 수면에 간지러운 모터의 음향이 새겨지고, 뱃머리가 뾰족하고 하얀 배가 물의 요정처럼 재빠르다.수맥을 뒤로 길게 끌면서 달리는 뱃전에 상쾌한 감각이 전해져 온다.물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강변의 백양나무 가로수를 바라보며 모두들 상쾌한 기분이었다.보트의 세 남자, 여기에 홍일점을 가하여 4인의 즐거운 하루의 행락은 수마일 의 상류를 우회하고 돌아오는 해질 무렵이였다. "이렇게 우리 원족은 끝났다.이건가." "여름도 끝났다.그렇다." 들떠 떠드는 하나이(花井[화정])와는 반대로 안영민(安英民)은 좀 말수가 적었다. 그 성격적인 차이를 얽어서 이상한 분위기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

폐물

권구현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08 3 0 30 2019-04-24
폐물(廢物) 때는 천구백이십사년이 마지막 가는, 눈 날리고 바람 부는 섣달 그믐밤었다. 나는 열한 점이나 거진 다 되었을 무렵에서 겨우 석간(夕刊) 배달을 마치고서 머리에서 발등까지 함부로 덮힌 눈을 모자를 벗어 툭툭 털며 종각 모퉁이를 나섰다. 지금 와서는 생각만 하여도 치가 떨릴 만치 몹시도 차운 밤이었건만 그때의 나는 김이 무럭무럭 날 듯한 더운 땀을 쳐 흘렸던 것이었다. 두렵건대 이것의 직접 체험자가 아닌 독자(讀者)로서는 이에 대하여 좀 상상하기에 부족한 혐의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리 석간 배달이 늦다고 할지라도 여섯 점이나 혹 일곱 점이면 끝이 나겠지만 다 아는 바와 같이 내일은 새해의 첫 달이다. 그러므로 신문 페이지 수는 여느 때..

풀잎

이효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0 3 0 10 2019-04-24
풀잎 ─시인 월트 윌먼을 가졌음은 인류의 행복이다.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요 며칠 동안의 제 생활의 변화를 두구 한 말 같어요, 이 끔찍한 변화를 기적이라구 밖엔 뭐라구 하겠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딘지 먼 하늘에서나 흘러오는 듯 삼라만상과 구별되어 궛속에 스며든다. 준보는 고개를 돌리나 먹같은 어둠 속에서는 그의 표정조차 분간할 수 없다. 얼굴이 달덩어리같이 훤하고 쌍꺼풀진 눈이 포도 알같이 맑은 것은 며칠 동안의 인상으로 그러려니 짐작할 뿐이다. 실과 사귄 지 불과 한 주일이 넘을락 말락 할 때다. "그건 꼭 내가 하구 싶은 말요. 지금 신비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이런 날이 있을 줄을 생각이나 해봤겠수. 행복은 불행이 그렇듯 아무 ..

풍자기

방정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33 3 0 42 2019-04-24
풍자기(諷刺記) 제법 봄철이다. 저녁 후에 산보격으로 천천히 날아 났으니, 어두워 가는 경성 장안의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이기 잘 해야 잘 살고, 거짓말 잘 해야 출세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디서 얼마나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잘 발라맞혔던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찍이 먹고 나선 놈들은, "내가 거짓말 선수다." 하고 점잖을 뽐내면서 걸어가는 곳이 물어볼 것 없이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이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술한 허리를 꼬부리고 부지런히 북촌으로 북촌으로 고비 끼어 올라가는 놈들은 어쩌다가 거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해서, 착하게 낳아 논 부모만 원망하면서, 점심을 끼고 밥 얻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묻지 않아도 저녁밥..

피묻은 편지 몇 쪽

나도향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9 3 0 11 2019-04-24
피묻은 편지 몇 쪽 마산(馬山)에 온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읍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적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는지요! 그러난 이 마산에 딱 와서 보니까 동경할 적에 그 아름다운 마산은 아니요, 환멸과 섬섬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나는 남들이 두고두고 몇 번씩 되짚어 말하여 온 조선 사람의 쇠퇴라든지 우리의 몰락을 일일이 들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선 안에서 다소간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 보고 느낀 바를 나도 보고 느끼었다 하면 더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병의 차도는 아직 같아서는 알 수가 없읍니다. 열도가 오르내리는 것이나 피를 뱉는 것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나 저녁으로 산보를 하는 것이 나의 일과입니다. 친구도 없고..

현숙

나정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40 3 0 24 2019-04-24
현숙(玄淑) 반 년 만에 두 사람은 만났다. 남자가 여자에게 초대를 받았으나 원래부터 이러한 기회 오기를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동무들의 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대면하고 보니 향기 있는 농후한 뺨, 진달래꽃 같은 입술, 마호가니 맛 같은 따뜻한 숨소리,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에게 더없는 흥분을 주었다. 확실히 반 년 전 여자는 아니었다. 어떠한 이성에게든지 기욕(嗜慾)을 소화할 수 있는 여자의 자태는 한껏 뻗치는 식지(食指)가 거리낌없이 신출(伸出)함을 기다리고 있는 양이었다. "……어떻든지 그대의 태도는 재미가 없었어. A상회를 3일 만에 고만둔 것이라든지 카페에 여급이 된 것이라든지……." "……하루라도 더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1 3 0 7 2019-04-24
회(懷) 한시반이 지나서야 차는 경성역에 닿는다. 중간에서 연해 더디 오는 북행을 기다려 엇갈리곤 하느라고 번번이 오래씩 충그리고 충그리고 하더니, 삼십 분이나 넘겨 이렇게 연착을 한다. 개성서 경성까지 원은 두 시간이 정한 제 시간이다. 그만 거리를 항용 삼십 분씩 사십 분씩은 늦기가 일쑤다. 요새는 직통열차고 구간열차고 모두가 시간을 안 지키기로 행습이 되었기망정이지, 생각하면 예사로 볼일이 아니다. 바로 앞자리에 돌아앉았던 중스름한 양복신사 둘이가, 내릴 채비로 외투를 입노라 모자를 쓰노라 하면서, 역시 그런 이야기다. "등장 가얄까 보군!" 베레모자 신사가 혼잣말하듯 하는 소리고, 다른 국방모 짜리는 마침 시계를 꺼내 보면서 "꼬옥 삼십오 분 꽈먹는걸!"..

희생화

현진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5 3 0 5 2019-04-24
희생화 어머님은 우리 남매를 다리고 사직골 막바지에서 쓸쓸한 가정을 이루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먹던 가을에 돌아가셨다 한다. 어머님께서 시시로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께서 목사로 계시던 것이며, 그 열렬한 웅변이 죄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하느님을 믿게 하던 것이며, 자기 몸은 조금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교회 일에 진심 갈력(盡心竭力)하던 것을 이야기하신다. 나 보담 사 년 맏이인 누님은 이 말을 들을 적마다 그 맑고 고운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철모르는 나는 그 이야기보담 어머님과 누님이 우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었다. 집안은 넉넉지는 아니하나마 많지 않은 식구라 아버지 생전에 장만하여 주신 몇 섬지기나 추수하는 것으로 기한은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K박사의 연구

김동인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2 3 0 9 2019-04-24
K박사의 연구 "자네 선생은 이즈음 뭘 하나?" 나는 어떤 날 K박사의 조수로 있는 C를 만나서 말끝에 이런 말을 물어보았다. "노신다네." "왜?" "왜라니?" "그새 뭘 연구하고 있었지?" "벌써 그만뒀지." "왜 그만둬?" "말하자면 장난이라네. 하기야 성공했지. 그렇지만 먹어주질 않으니 어쩌나." "먹다니?"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자네 시식회에 안 왔었나?" "시식회?" C의 말은 전부 ‘?’였다. "시식회까지 모를 적에는 자네는 모르는 모양일세그려. 그럼 내 이야기해줄게 웃지 말고 듣게." 이러한 말끝에 C는 K박사의 연구며 그 성공에서 실패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O형의 인간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7 3 0 15 2019-04-24
O형의 인간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났는가 봅니다. 이후부터는 당신도 나를‘부양’(당신 말씀대로)할 의무가 없어졌고 나도 당신의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무거운 짐을 벗었는가 합니다. 당신도 후련하시겠지마는 나도 아주 홀가분합니다. 그렇습니다, O씨. 이 순간부터의 나는 당신의 아내도 아니요, 경남이와 경희 두 남매의 어미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신도 박선희의 의사를 남편이라는 귄위로써 좌우하실 수 없으시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벌써 당신의 아내가 아닌 나이고 보니 당신이 나의 뜻을 무시한 그 어떤 명령에도 좇지 않아도 좋게 된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가 고해 같은 인생의 반려로서 손을 맞잡기 전인 그 옛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으니까요 ─ 아니 A박사의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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