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칠칠단의 비밀

방정환 | 토지 | 3,000원 구매
0 0 321 35 0 16 2019-04-23
칠칠단의 비밀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해서, 온 장안 사람이 꽃에 취할 때였습니다. 서울 명동 진고개 어귀에는 며칠 전에 새로 온 곡마단의 재주가 서울 왔다 간 곡마단 중에 제일 재미있고 제일 신기하다 하여, 동물원 구경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낮과 밤으로 그칠 새 없이 들이밀려서 들어가지 못하고 도록 돌아가는 이가 더 많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곡마단의 주인은 일본 사람 내외이고, 재주 부리는 사람도 모두 일본 사람인데, 그 중에는 중국사람 내외가 한패 끼어 있을 뿐이고……, 이 곡마단이 일본과 중국으로 돌아다니면서 돈벌이를 하다가, 조선에 와서 재주를 부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므로, 서울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말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재주가 더 많이 있었습니다. 어여쁜 여자가..

칠현금

김사량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54 3 0 43 2019-04-23
칠현금 얼마 전 이 국영제철소에 문학동맹중앙위원회로부터 파견되어 나온 작가 S는 직장위원회 문화부의 걸상에 앉아 지금까지 이곳 제철 노동자들이 손수 써놓은 문예작품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생산계획 초과달성과 기간단축운동의 최후돌격기에 들어간 제철소는 공장 전체를 들어 그야말로 장엄한 군악을 울리는 듯하였다. 중천에 버티고 앉아 쇠물을 내뿜으며 지동을 치는 용광로 불길이며 너울너울 무쇠가 끓어 번지는 불가마들이며 활개를 저으며 달리는 기중기, 불방아를 찧으며 돌아가는 압연로라, 그 밑으로 몸부림을 치며 달려나오는 시뻘건 철판, 흠실흠실 무너져 나오는 해탄더미의 불담벽! 제철소의 웅심깊은 호흡과 장쾌한 파동이 그의 가슴속을 벅차게 넘쳐 흐르는 듯하였 다. 이처럼 우람차..

패배자의 무덤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5 3 0 29 2019-04-24
패배자(敗北者)의 무덤 오래비 경호는 어느새 고개를 넘어가고 보이지 않는다. 경순은 바람이 치일세라 겹겹이 뭉뚱그린 어린것을 벅차게 앞으로 안고 허덕지덕, 느슨해진 소복치마 뒷자락을 치렁거리면서, 고개 마루턱까지 겨우 올라선다. 산이라기보다도 나차막한 구릉(丘陵)이요, 경사가 완만하여 별로 험한 길이랄 것도 없다. 그런 것을, 이다지 힘이 드는고 하면, 산후라야 벌써 일곱 달인 걸 여태 몸이 소성되지 않았을 리는 없고, 혹시 남편의 그 참변을 만났을 제 그때에 원기가 축가고 만 것이나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아무리 애석한 소년 죽음일값에, 가령 병이 들어 한동안 신고를 하든지 했다면야 주위의 사람도 최악의 경우를, 신경의 단련이라고 할까 여유라고..

푸른탑

이효석 | 토지 | 3,000원 구매
0 0 334 18 0 7 2019-04-24
푸른탑 물위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봐, 철교야." 강폭이 넓어져 오는 수면에 간지러운 모터의 음향이 새겨지고, 뱃머리가 뾰족하고 하얀 배가 물의 요정처럼 재빠르다.수맥을 뒤로 길게 끌면서 달리는 뱃전에 상쾌한 감각이 전해져 온다.물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강변의 백양나무 가로수를 바라보며 모두들 상쾌한 기분이었다.보트의 세 남자, 여기에 홍일점을 가하여 4인의 즐거운 하루의 행락은 수마일 의 상류를 우회하고 돌아오는 해질 무렵이였다. "이렇게 우리 원족은 끝났다.이건가." "여름도 끝났다.그렇다." 들떠 떠드는 하나이(花井[화정])와는 반대로 안영민(安英民)은 좀 말수가 적었다. 그 성격적인 차이를 얽어서 이상한 분위기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하..

폐물

권구현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11 3 0 30 2019-04-24
폐물(廢物) 때는 천구백이십사년이 마지막 가는, 눈 날리고 바람 부는 섣달 그믐밤었다. 나는 열한 점이나 거진 다 되었을 무렵에서 겨우 석간(夕刊) 배달을 마치고서 머리에서 발등까지 함부로 덮힌 눈을 모자를 벗어 툭툭 털며 종각 모퉁이를 나섰다. 지금 와서는 생각만 하여도 치가 떨릴 만치 몹시도 차운 밤이었건만 그때의 나는 김이 무럭무럭 날 듯한 더운 땀을 쳐 흘렸던 것이었다. 두렵건대 이것의 직접 체험자가 아닌 독자(讀者)로서는 이에 대하여 좀 상상하기에 부족한 혐의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 같으면 아무리 석간 배달이 늦다고 할지라도 여섯 점이나 혹 일곱 점이면 끝이 나겠지만 다 아는 바와 같이 내일은 새해의 첫 달이다. 그러므로 신문 페이지 수는 여느 때..

풀잎

이효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52 3 0 10 2019-04-24
풀잎 ─시인 월트 윌먼을 가졌음은 인류의 행복이다.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요 며칠 동안의 제 생활의 변화를 두구 한 말 같어요, 이 끔찍한 변화를 기적이라구 밖엔 뭐라구 하겠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딘지 먼 하늘에서나 흘러오는 듯 삼라만상과 구별되어 궛속에 스며든다. 준보는 고개를 돌리나 먹같은 어둠 속에서는 그의 표정조차 분간할 수 없다. 얼굴이 달덩어리같이 훤하고 쌍꺼풀진 눈이 포도 알같이 맑은 것은 며칠 동안의 인상으로 그러려니 짐작할 뿐이다. 실과 사귄 지 불과 한 주일이 넘을락 말락 할 때다. "그건 꼭 내가 하구 싶은 말요. 지금 신비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이런 날이 있을 줄을 생각이나 해봤겠수. 행복은 불행이 그렇듯 아무 ..

풍자기

방정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37 3 0 42 2019-04-24
풍자기(諷刺記) 제법 봄철이다. 저녁 후에 산보격으로 천천히 날아 났으니, 어두워 가는 경성 장안의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이기 잘 해야 잘 살고, 거짓말 잘 해야 출세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디서 얼마나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잘 발라맞혔던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찍이 먹고 나선 놈들은, "내가 거짓말 선수다." 하고 점잖을 뽐내면서 걸어가는 곳이 물어볼 것 없이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이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술한 허리를 꼬부리고 부지런히 북촌으로 북촌으로 고비 끼어 올라가는 놈들은 어쩌다가 거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해서, 착하게 낳아 논 부모만 원망하면서, 점심을 끼고 밥 얻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묻지 않아도 저녁밥..

피묻은 편지 몇 쪽

나도향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3 3 0 11 2019-04-24
피묻은 편지 몇 쪽 마산(馬山)에 온 지도 벌써 두 주일이 넘었읍니다. 서울서 마산을 동경할 적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마산이었는지요! 그러난 이 마산에 딱 와서 보니까 동경할 적에 그 아름다운 마산은 아니요, 환멸과 섬섬함을 주는 쓸쓸한 마산이었나이다. 나는 남들이 두고두고 몇 번씩 되짚어 말하여 온 조선 사람의 쇠퇴라든지 우리의 몰락을 일일이 들어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조선 안에서 다소간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이 보고 느낀 바를 나도 보고 느끼었다 하면 더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병의 차도는 아직 같아서는 알 수가 없읍니다. 열도가 오르내리는 것이나 피를 뱉는 것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나 저녁으로 산보를 하는 것이 나의 일과입니다. 친구도 없고..

현숙

나정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46 3 0 24 2019-04-24
현숙(玄淑) 반 년 만에 두 사람은 만났다. 남자가 여자에게 초대를 받았으나 원래부터 이러한 기회 오기를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동무들의 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대면하고 보니 향기 있는 농후한 뺨, 진달래꽃 같은 입술, 마호가니 맛 같은 따뜻한 숨소리,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에게 더없는 흥분을 주었다. 확실히 반 년 전 여자는 아니었다. 어떠한 이성에게든지 기욕(嗜慾)을 소화할 수 있는 여자의 자태는 한껏 뻗치는 식지(食指)가 거리낌없이 신출(伸出)함을 기다리고 있는 양이었다. "……어떻든지 그대의 태도는 재미가 없었어. A상회를 3일 만에 고만둔 것이라든지 카페에 여급이 된 것이라든지……." "……하루라도 더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6 3 0 7 2019-04-24
회(懷) 한시반이 지나서야 차는 경성역에 닿는다. 중간에서 연해 더디 오는 북행을 기다려 엇갈리곤 하느라고 번번이 오래씩 충그리고 충그리고 하더니, 삼십 분이나 넘겨 이렇게 연착을 한다. 개성서 경성까지 원은 두 시간이 정한 제 시간이다. 그만 거리를 항용 삼십 분씩 사십 분씩은 늦기가 일쑤다. 요새는 직통열차고 구간열차고 모두가 시간을 안 지키기로 행습이 되었기망정이지, 생각하면 예사로 볼일이 아니다. 바로 앞자리에 돌아앉았던 중스름한 양복신사 둘이가, 내릴 채비로 외투를 입노라 모자를 쓰노라 하면서, 역시 그런 이야기다. "등장 가얄까 보군!" 베레모자 신사가 혼잣말하듯 하는 소리고, 다른 국방모 짜리는 마침 시계를 꺼내 보면서 "꼬옥 삼십오 분 꽈먹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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