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단의 비밀
여러 가지 꽃들이 만발해서, 온 장안 사람이 꽃에 취할 때였습니다. 서울 명동 진고개 어귀에는 며칠 전에 새로 온 곡마단의 재주가 서울 왔다 간 곡마단 중에 제일 재미있고 제일 신기하다 하여, 동물원 구경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낮과 밤으로 그칠 새 없이 들이밀려서 들어가지 못하고 도록 돌아가는 이가 더 많을 지경이었습니다.
이 곡마단의 주인은 일본 사람 내외이고, 재주 부리는 사람도 모두 일본 사람인데, 그 중에는 중국사람 내외가 한패 끼어 있을 뿐이고……, 이 곡마단이 일본과 중국으로 돌아다니면서 돈벌이를 하다가, 조선에 와서 재주를 부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므로, 서울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말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재주가 더 많이 있었습니다.
어여쁜 여자가 해골로 변하여 춤을 추는 것도 재미있었고, 조그만 원숭이와 커다란 사자가 재주를 부리는 것들도 모두 처음 보는 재미있는 것이고, 중국 여자가 접시 돌리는 것이며, 그 남편이 웃통을 벗고 누워서 가슴 위에 큰 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큰 사람 일곱 사람을 올려 세우고도, 그리고도 발끝으로 재주를 부리는 것도 참말로 신통한 구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자보다도 중국 사람보다도 더 구경꾼의 마음을 끄는것은, 말 등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열대여섯 살의 소년 한 사람과 가느다란 철줄 위에서 무도[無蹈]를 하는 열서너 살의 어여쁜 소녀였습니다.
방정환
(方定煥)
(1899년 ~ 1931년)
아동 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본관은 온양(溫陽).
필명은 잔물, 소파(小波), 소파생, SP, SP生, CWP, CW生, 목성(牧星), 북극성(北極星) 등이 있다.
1913년 서울미동초등학교를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중퇴.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 여사와 중매 결혼하였다
한국 최초의 영화 잡지《녹성(綠星)》(1919년)의 편집에도 관여했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1923년 최초로 본격적인 아동문학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아동문학 활동을 한 기간은 약 10년으로 〈형제별〉·〈가을밤〉·〈귀뚜라미〉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창작보다는 번안작품이 더 많다
1931년 7월 23일, 3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소파전집》·《방정환 아동문학 독본》·《동생을 찾으러》·《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발간되었다.
‘새싹회’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1957년 소파상을 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