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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기

방정환 소설

풍자기(諷刺記) 제법 봄철이다. 저녁 후에 산보격으로 천천히 날아 났으니, 어두워 가는 경성 장안의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이기 잘 해야 잘 살고, 거짓말 잘 해야 출세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디서 얼마나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잘 발라맞혔던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찍이 먹고 나선 놈들은, "내가 거짓말 선수다." 하고 점잖을 뽐내면서 걸어가는 곳이 물어볼 것 없이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이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술한 허리를 꼬부리고 부지런히 북촌으로 북촌으로 고비 끼어 올라가는 놈들은 어쩌다가 거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해서, 착하게 낳아 논 부모만 원망하면서, 점심을 끼고 밥 얻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묻지 않아도 저녁밥 먹으려고 집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
풍자기(諷刺記)

제법 봄철이다.
저녁 후에 산보격으로 천천히 날아 났으니, 어두워 가는 경성 장안의 길거리에는 사람놈들의 왕래가 자못 복잡스럽다.
속이기 잘 해야 잘 살고, 거짓말 잘 해야 출세하는 놈들의 세상에서 어디서 얼마나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잘 발라맞혔던지, 돈푼 감추어 둔 덕에 저녁밥 한 그릇 일찍이 먹고 나선 놈들은,
"내가 거짓말 선수다."
하고 점잖을 뽐내면서 걸어가는 곳이 물어볼 것 없이 감추어 둔 계집의 집이 아니면 술집일 것이요, 허술한 허리를 꼬부리고 부지런히 북촌으로 북촌으로 고비 끼어 올라가는 놈들은 어쩌다가 거짓말 솜씨를 남만큼 못해서, 착하게 낳아 논 부모만 원망하면서, 점심을 끼고 밥 얻으러 다니는 패들이니, 묻지 않아도 저녁밥 먹으려고 집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그 중에도 그 오가는 복잡한 틈에 간신히 이름 높은 유명한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부럽게 바라보고, 우러러보고 하는 것은 그가 치마라 하는 굉장한 옷을 입고, 마음에 없는 웃음을 잘 웃는 재주덕으로, 누구보다도 훌륭한 팔자를 누리게 된 사람들의 세상 치고는 가장 유명한 선수인 까닭이다.
그렇게 유명한 선수가 팔다가 남은 고기를 털 외투에 싸 가지고 송곳 같은 구두를 신고 갸우뚱갸우뚱 지나가시는 그 옆에서는 이틀을 팔고도 못다 팔고, 남은 비웃[靑魚]을 어떻게든지 아무에게나 속여 넘기려고,
"비웃이 싸구려, 비웃이 싸요. 갓잡은 비웃이 싸구려."
하고 눈이 벌개가지고 외치고 있다. 냄새는 날망정 바로 펄펄 뛰는 비웃이라고, 악을 쓰고 떠드는 꼴이야 제법 장래 유망한 성공가가 될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대체 사람놈들의 세상처럼 거꾸로만 된 놈의 세상이 또 어디 있으랴. 바른 말만 해 보겠다는 내가 도리어 어리석은 짓이지…….
앗차차 여기가 어디냐?
방정환
(方定煥)
(1899년 ~ 1931년)
아동 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본관은 온양(溫陽).
필명은 잔물, 소파(小波), 소파생, SP, SP生, CWP, CW生, 목성(牧星), 북극성(北極星) 등이 있다.
1913년 서울미동초등학교를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중퇴.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 여사와 중매 결혼하였다
한국 최초의 영화 잡지《녹성(綠星)》(1919년)의 편집에도 관여했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1923년 최초로 본격적인 아동문학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아동문학 활동을 한 기간은 약 10년으로 〈형제별〉·〈가을밤〉·〈귀뚜라미〉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창작보다는 번안작품이 더 많다
1931년 7월 23일, 3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소파전집》·《방정환 아동문학 독본》·《동생을 찾으러》·《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발간되었다.
‘새싹회’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1957년 소파상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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