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젊은 용사들

김동인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58 3 0 3 2019-04-22
젊은 용사(勇士) 들 지금으로부터 사천이백칠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사회라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못하였다. 나라 ─ 국가라는 것도 아주 분명치 못하였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 달라서 머리가 총명하여 짐승같이 단지 천연적 물건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으로 좀더 어떻게 잘살아 보자고, 농사짓는 법도 발명하고, 사냥이며 고기잡이도하며, 집을 지어서 대자연의 덥고 추운 것을 방비하며 ─ 이렇게 나날이 더 잘살아 갈 방법을 연구하며 실행하며 살아 왔다. 그렇게 되니까 저절로 농사 잘 짓는 사람은 평지에서 살고 고기잡이 잘하는 사람은 강변이나 바닷가에서 살고 사냥 잘하는 사람은 산으로 가고 ─ 이리하여 부락(部落)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동리라는 것이 ..

정열의 낙랑공주

윤백남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23 3 0 23 2019-04-23
정열의 낙랑공주(樂浪公主) 무르익었던 봄빛도 차차 사라지고 꽃 아래서 돋아나는 푸르른 새 움이 온 벌을 장식하는 첫 여름이었다. 옥저(沃沮)땅 넓은 벌에도 첫 여름의 빛은 완연히 이르렀다. 날아드는 나비, 노래하는 벌레…… ── 만물은 장차 오려는 성하(盛夏)를 맞기에 분주하였다. 이 벌판 곱게 돋은 잔디 밭에 한 소년이 딩굴고 있다. 그 옷 차림으로 보든지 또는 얼굴 모양으로 보든지 고귀한 집 도령이 분명한데 한 사람의 하인도 데리지 않고 홀로히 이 벌판에서 딩굴고 있다. 일없는 한가한 시간을 벌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보내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때때로 벌떡 일어나서는 동편쪽 행길을 멀리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젊은이의 시절

나도향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8 3 0 6 2019-04-22
젊은이의 시절 아침 이슬이 겨우 풀 끝에서 사라지려 하는 봄날 아침이었다. 부드러운 공기는 온 우주의 향기를 다 모아다가 은하(銀河)같은 맑은 물에 씻어 그윽하고도 달콤한 냄새를 가는 바람에 실어다 주는 듯하였다. 꽃다운 풀냄새는 사면에서 난다. 작은 여신의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풀포기 위에 다리를 뻗고 사람의 혼을 최음제(催淫劑)의 마약으로 마비시키는 듯한 봄날의 보이지 않는 기운에 취하여 멀거니 앉아 있는 조철하는 그의 핏기 있고 타는 듯한 청년다운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어디인지 찾아낼 수 없는 우수의 빛이 보인다. 그는 때때로 가슴이 꺼지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천천한 걸음으로 시내가 흐르는 구부러진 나무 밑으로 갔다. 흐르는 맑은 물이 재미있게..

정자나무 있는 삽화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05 3 0 24 2019-04-23
정자나무 있는 삽화(揷畵) 앞과 좌우로는 변두리가 까마아득하게 퍼져나간 넓은 들이, 이편짝 한 귀퉁이가 나지막한 두 자리의 야산(野山) 틈사구니로 해서 동네를 바라보고 홀쪽하니 졸아 들어온다. 들어오다가 뾰족한 끝이 일변 빗밋한 구릉(丘陵)을 타고 내려앉은 동네. ‘쇠멀’이라고 백 호 남짓한 농막들이 옴닥옴닥 박힌 촌 동네와 맞닿기 전에 두어 마장쯤서 논 가운데로 정자 나무가 오똑 한 그루. 먼빛으로는 조그마하니, 마치 들 복판에다가 박쥐우산을 펴서 거꾸로 꽂아놓은 것처럼 동글 다북한 게 그림 같아 아담해보이기도 하지만, 정작은 두 아름이 넘은 늙은 팽나무다. 멍석을 서너 잎은 폄직하게 두릿 평평한 봉분이 사람의 정강이 하나 폭은 논바닥에서 솟았고, 저편 가로다가 울..

정조와 약가

현진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8 3 0 14 2019-04-23
정조(貞操)와 약가(藥價) 최 주부는 조그마한 D촌이 모시고 있기에도 오감할 만큼 유명한 의원이다. 읍내 김 참판 댁 손부가 산후증으로 가슴이 치밀어서 금일금일 운명할 것을 단 약 세 첩에 돌린 것도 신통한 일이어니와, 더구나 조 보국 댁 젊은 영감님이 속병으로 해포를 고생하여 경향의 명의는 다 불러 보았으되 그래도 효험이 안 나니까 그 숱한 돈을 들여 가며 서울에 올라가 병원인가 한 데에서 여러 달포를 몸져누워 치료를 받았으되 필경에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 돌아 오게 된 것을 이 최 주부의 약 두 제 먹고 근치가 된 것도 신기한 이야깃거리다. 이 촌에서 저 촌으로 그야말로 궁둥이 붙일 겨를도 없이 불려 다니고 심지어 서울 출입까지 항다반 있었다. 애병, 어른병, 속병, ..

정조원

백신애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2 3 0 13 2019-04-23
정조원(貞操恐) 해 지자 곧 돋은 정월 대보름달을 뜰 한가운데서 맞이한 경순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일곱 시가 되기까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으나 얼른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경대 앞에 앉았다. 분첩으로 얼굴을 문지른 후 머리를 쓰다듬어 헤어핀을 고쳐 꽂고 치마저고리를 갈아입었다. 외투를 벗겨 착착 개켜 툇마루에 내놓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 잠깐 놀러 갈 테야." 하고 밀창을 방싯 열고 말했다. "어디를 가? 혼자가나." 어머니는 그날 밤에 놀러 오기로 약속한 동네 부인네들을 기다리며 별로 의심하는 기척도 없이 순순히 허락하였다. "내 잠깐만 놀다 올 테에요." 경순은 어머니에게서 더 무슨 말이 나오기 전에 얼른 문을 닫아주고 툇마루에 놓인..

지형근

나도향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48 8 0 20 2019-04-23
지형근 지형근(池亨根)은 자기 집 앞에서 괴나리봇짐 질빵을 다시 졸라매고 어머니와 자기 아내를 보았다. 어머니는 마치 풀 접시에 말라붙은 풀껍질같이 쭈글쭈글한 얼굴 위에 뜨거운 눈물 방울을 떨어뜨리며 아들 형근을 보고 목메이는 소리로, "몸이 성했으면 좋겠다마는 섬섬약질이 객지에 나서면 오죽 고생을 하겠니. 잘 적에 더웁게 자고 음식도 가려 먹고 병날까 조심하여라! 그리고 편지해라!" 하며 느껴 운다. 형근의 젊은 아내는 돌아서서 부대로 만든 행주치마로 눈물을 씻으며 코를 마셔 가며 울면서도 자기 남편을 마지막 다시 한번 보겠다는 듯이 훌쩍 고개를 돌리어 볼 적에 그의 눈알은 익을 둥 말 둥한 꽈리같이 붉게 피가 올라왔다. "네, 네!" 형근은 대답만 하면서 ..

첫사랑

현경준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7 3 0 24 2019-04-23
첫사랑 물속같이 고요한 밤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은 곱게 닦아논 유리면처럼 정결하여 보이고 서편 쪽 관암봉 어깨에는 버들잎을 오려 붙인 듯 초생달이 위태롭게 걸려 바람이 불면 금시에 한들한들 떨어질 것만 같다. 물결도 ── 바다 물결도 이 밤만은 깊은 꿈속에 침적된 듯 숨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속에서 인호와 남순이는 그들도 온갖 잡념에서 침정되어 그림자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모래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만 움직이는 것이란 멀리 알섬에서 깜박이는 등댓불이다. 만은 그것도 금시에 꺼지려고 가물거리는 새벽 등불처럼 힘없어 보인다. 둘은 시간이라든지 세상사 같은 것은 말짱하게 생각 속에서 씻어버리고 어느때까지든지 한모양으로 희..

천재

윤기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0 3 0 29 2019-04-23
천재(天災) 가물에 비를 기다리는 농군의 마음이란 비할 때 없이 안타깝고 눈물겨운 일이다. 솔개미 그림자만 지지리 탄 땅위로 스칠라 치면 행여나 구름장인가 하는 무슨 기적이 아니면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반갑고도 일면 조마조마한 생각에 끌려 뭇사람은 재빠르게 허공만 헛되이 치여다 본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두벌 김이나 나갔을 터인데 금년엔 어찌나 가물던지 초복이 가까워도 제법 모 한포기 꽂아보지 못한 이 근처 마을사람들은 불안에 싸여있다. 생전 비라고는 안 올 듯한 날씨가 거듭할수록 군데군데서 일어나는 물싸움만이 더욱 소란해질 뿐이오. 오늘도 봉례네 집에서는 이른 아침밥이 끝난 다음 그의 아버지는 활등같이 굽은 등에다가 가래를 둘러 메고 개울로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

최서방

계용묵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03 3 0 10 2019-04-23
최서방(崔書房) 새벽부터 분주히 뚜드리기 시작한 최서방네 벼마당질은 해가 졌건만 인제야 겨우 부추질이 끝났다. 일꾼들은 어둡기 전에 작석을 하여 치우려고 부리나케 섬몽이를 튼다. 그러나 최서방은 아침부터 찾아와 마당질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우들부들 떨며 마당가에 쭉 늘어선 차인꾼들을 볼 때에 섬몽이를 틀 힘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실상 마당질 끝나는 것이 귀치않다느니보다 죽기만치나 겁이 난 것이다. 그것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호미값(胡米價)이라 약값(藥價)이라 하고 조르는 것을 벼를 뚜드려서 준다고 오늘 내일 하고 미뤄오던 것인데 급기야 벼를 뚜드리고 보니 그들의 빚은 갚기는커녕 송지주의 농채도 다 갚기에 벼 한 알이 남아서지 않을 것 같아서 으레 싸움이 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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