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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윤기정 단편소설

천재(天災) 가물에 비를 기다리는 농군의 마음이란 비할 때 없이 안타깝고 눈물겨운 일이다. 솔개미 그림자만 지지리 탄 땅위로 스칠라 치면 행여나 구름장인가 하는 무슨 기적이 아니면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반갑고도 일면 조마조마한 생각에 끌려 뭇사람은 재빠르게 허공만 헛되이 치여다 본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두벌 김이나 나갔을 터인데 금년엔 어찌나 가물던지 초복이 가까워도 제법 모 한포기 꽂아보지 못한 이 근처 마을사람들은 불안에 싸여있다. 생전 비라고는 안 올 듯한 날씨가 거듭할수록 군데군데서 일어나는 물싸움만이 더욱 소란해질 뿐이오. 오늘도 봉례네 집에서는 이른 아침밥이 끝난 다음 그의 아버지는 활등같이 굽은 등에다가 가래를 둘러 메고 개울로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내 눈이라곤 오지 않은 데다가 지독한..
천재(天災)
가물에 비를 기다리는 농군의 마음이란 비할 때 없이 안타깝고 눈물겨운 일이다. 솔개미 그림자만 지지리 탄 땅위로 스칠라 치면 행여나 구름장인가 하는 무슨 기적이 아니면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반갑고도 일면 조마조마한 생각에 끌려 뭇사람은 재빠르게 허공만 헛되이 치여다 본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두벌 김이나 나갔을 터인데 금년엔 어찌나 가물던지 초복이 가까워도 제법 모 한포기 꽂아보지 못한 이 근처 마을사람들은 불안에 싸여있다. 생전 비라고는 안 올 듯한 날씨가 거듭할수록 군데군데서 일어나는 물싸움만이 더욱 소란해질 뿐이오. 오늘도 봉례네 집에서는 이른 아침밥이 끝난 다음 그의 아버지는 활등같이 굽은 등에다가 가래를 둘러 메고 개울로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내 눈이라곤 오지 않은 데다가 지독한 강추위로 해서 다 얼어 죽다시피 된 갈보리를 다른 식구들은 생각지도 않고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먹이에 하도 궁하니까 그래도 좀 건져먹을게 있을까 하고서 낫을 들고 보리밭으로 나갔고 봉례의 남편인 갑룡이는 용두레 질을 하려고 바로 자기가 부치는 논두렁 옆웅덩이로 나간 다음 봉례는 밥 먹은 설거지와 여기저기 귀살머리쩍게 벌려놓은 군지력이를 걷어치우는 동안 올봄에 겨우 백날 지낸 아들놈이 일곱 살 나는 제 누이에게 안겨서 젖 달라고 보채다 못해 나중에는 악파듯 우는 바람에 치우던 것을 건성건성 보살피고는 자지러지게 우는 어린애를 딸년 금순이에게서 받아가지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젖꼭지를 어린애 입에다 물렸다.
윤기정(尹基鼎)

1903 ~ 1955.3.1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효봉(曉峰)·효봉산인(曉峰山人).
보인학교 졸업.
월간지 《조선지광》에 《성탄야의 추억》(1921), 《미치는 사람》(1927) 등을 발표
1931년과 1934년에는 두 차례의 카프 검거사건으로 검거되었다가 각각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광복후 송영·한설야(韓雪野)·이기영(李箕永) 주도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소설은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적인 요구를 기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써, 특히 노동자들의 삶의 고통과 착취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있다.

「새살림」(문예시대, 1927.1.)·「밋치는 사람」(조선지광, 1927.6.∼7.)·「딴길을 걷는 사람들」(조선지광, 1927.9.)·「압날을 위하야」(예술운동, 1927.11.)·「의외(意外)」(조선지광, 1928.4.)·「양회굴둑」(조선지광, 1930.6.)·「자화상」(조선문학, 1936.8.)·「사생아」(사해공론, 1936.9.)·「적멸(寂滅)」(조선문단, 1936.10.)·「거부(車夫)」(조광, 1936.11.)「이십원」(풍림, 1936.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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