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貞操)와 약가(藥價)
최 주부는 조그마한 D촌이 모시고 있기에도 오감할 만큼 유명한 의원이다. 읍내 김 참판 댁 손부가 산후증으로 가슴이 치밀어서 금일금일 운명할 것을 단 약 세 첩에 돌린 것도 신통한 일이어니와, 더구나 조 보국 댁 젊은 영감님이 속병으로 해포를 고생하여 경향의 명의는 다 불러 보았으되 그래도 효험이 안 나니까 그 숱한 돈을 들여 가며 서울에 올라가 병원인가 한 데에서 여러 달포를 몸져누워 치료를 받았으되 필경에는 앙상하게 뼈만 남아 돌아 오게 된 것을 이 최 주부의 약 두 제 먹고 근치가 된 것도 신기한 이야깃거리다. 이 촌에서 저 촌으로 그야말로 궁둥이 붙일 겨를도 없이 불려 다니고 심지어 서울 출입까지 항다반 있었다. 애병, 어른병, 속병, 헐미 할 것 없이 그의 손이 닿는 데는 마치 귀신이 붙어 다니는 것처럼 신통한 효력을 내었다. 맥도 잘 짚고 침도 잘 놓고 헐미도 잘 째고 백발백중하는 그 탕약이야 말할 것도 없지마는, 무슨 약으로 어떻게 맨들었는지 그의 고약이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명약이었다. 나무하다가 낫에 베인 손가락, 모숨기하다가 거마리한테 물리고 그대로 발이 짓물러서 썩어 들어가는 데도 그의 고약 한장이면 씻은 듯이 나았다. 곽란을 만나 금방 수족이 차고 맥이 얼어붙는 것도 그의 침 한 대면은 당장에 돌린다.
그 중에도 아낙네 사이에 더더욱 평판이 좋았다. 그의 빼어난 재조는 부인병……더욱이 젊은 부인병에 더욱 빛난다. 김 참판 댁 손부에게 발휘한 것과 같이 산후증에 더욱 묘를 얻었지만 대하증 오줌소태도 영락없이 곤쳐 주고, 더욱 놀랜 것은 애를 배태도 못하는 여자라도 그의 약을 한두 제만 먹으면 흔히 옥동 같은 아들을 쑥쑥 낳아 내뜨리는 일이다.
그는 금년에 간당 쉰 살이다. 쉰 살이면 우연만한 늙은이라 하겠으되 머리에 흰 털 하나 없이 검은 윤이 지르르 흐르는 듯하다. 삶아 놓은 게딱지 같은 시뻘건 얼골빛과 방울빛과 같이 둥글고 큼직한 코는 언제든지 기운 좋고 혈운 좋아 보이었다.
현진건(玄鎭健)
1900. 8. 9. ~ 1943. 4. 25.
호는 빙허(憑虛).
1900년 8월 9일 대구 출생.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 후, 1917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 졸업.
1918년 상해 호강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동명』, 『시대일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
1943년 4월 25일 사망하였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여 문단활동을 시작.
1921년 자전적 소설 「빈처」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타」(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과 장편 「적도」(1933~1934), 「무영탑」(1938)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