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낙랑공주(樂浪公主)
무르익었던 봄빛도 차차 사라지고 꽃 아래서 돋아나는 푸르른 새 움이 온 벌을 장식하는 첫 여름이었다.
옥저(沃沮)땅 넓은 벌에도 첫 여름의 빛은 완연히 이르렀다. 날아드는 나비, 노래하는 벌레……
── 만물은 장차 오려는 성하(盛夏)를 맞기에 분주하였다.
이 벌판 곱게 돋은 잔디 밭에 한 소년이 딩굴고 있다. 그 옷 차림으로 보든지 또는 얼굴 모양으로 보든지 고귀한 집 도령이 분명한데 한 사람의 하인도 데리지 않고 홀로히 이 벌판에서 딩굴고 있다.
일없는 한가한 시간을 벌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보내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때때로 벌떡 일어나서는 동편쪽 행길을 멀리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가는 다시 누워 딩굴고 하는 품이 동쪽 행길에 장차 나타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기를 한나절, 첫 여름의 긴 해도 좀 서쪽으로 기운 듯한 때에 이 소년은 또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소년은 비로소 빙긋 웃었다. 그리고 빨리 일어나서 좀 이편 쪽에 있는 수풀에 몸을 숨겼다. 거기는 이 소년의 승마(乘馬)인 듯한 수안장의 백마가 한마리 소년을 가다리고 있었다.
이 소년이 들 풀에 몸을 숨기자 저편 행길에서는 완연히 인마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차차 커지면서 행길에는 한 행차가 나타났다.
윤백남(尹白南)
1888∼1954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1888년 충남 공주 출생. 본명 윤교중(尹敎重).
경성학당 졸업. 와세다대학 정경과 수학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강사.
매일신보 기자.
1912년 조일재(趙一齋)와 신파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창단, 배우로 연극활동.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
「등대지기」·「기연(奇緣)」·「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다.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개화기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금융인으로 출발해 언론인·연극인·교육자·문인·영화인·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고자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