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생활 20년기
일보(一步) 형!
올해 내 나이 마흔이니 뜻을 조각에 두고 지낸 것이 20년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스무살 적에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생 27명 중 24번으로 겨우겨우 치루고 동경을 향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중학 시대에는 학교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우미관, 단성사, 광무대로 허구한 날 돌아다니었는데, 그때의 짝패로 일보(*소설가 함대훈의 호)형에게 소개하여도 좋을 사람은 회월 박영희 형과 고범 이서구 형과 그리고는 비사제(鄙舍弟) 팔봉 김기진 등을 들 수 있습니다만은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완전히 우리의 당파는 아니었고 미지근한 동정자들이어서 나처럼 전문적이지는 않았던 만큼 학교 성적도 월등 좋았더랍니다.
중학생으로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구경을 많이 다니고서야 제 무슨 수로 학과를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지긋지긋한 시험 때를 당할 때마다 협잡하는 기술과 창의만은 신중하여서 근근히 낙제를 면하였더랍니다.
김복진
(金復鎭)
1901 ~ 1940.8.18
호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생.
계급문학운동가 김기진(金基鎭)의 형이다.
1915년 영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渡日),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한국의 근대 조각가.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화단에 도입하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었다.
주요작품으로 《나상(裸像)》 《목》(1936) 《불상습작(佛像習作)》(1936) 《나부(裸婦)》(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