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
"선생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병원엘 일찍 갔다와야겠는데 어쩌나 그동안 심심하셔서… 내 얼핏 다녀올게 혼자 공상이나 하시고 눠 계세요, 네."
명숙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이 머리맡에 놓인 아침에 한금밖에 아니 남았던 물약을 마저 먹어 빈병이 된 걸 집어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철이는 명숙이가 하루 건너 여기서 오리나 되는 병원으로 약을 가지러 가는 때면 아닌 게 아니라 주위가 갑자기 쓸쓸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진종일 꼬박이 누워 있어야 찾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직 명숙이 하나만이 자기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 줄 뿐이니 병으로 앓는 것보다도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이 무한히 그리워 그것이 더 한층, 병들어 누워 약해진 자기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프고 저리게 한 적이 많았다.
오늘도 명숙이가 나간 다음 죽은 듯이 고요해진 텅 빈 방안에 홀로 누워 두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그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기가 과시 안타깝고 지루하였다. 가만히 드러누운 채 곁눈질로 방안을 둘러보니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이 그나마 눈부시게 하며 발 얕은 네모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채색칠한 사기 화병에는 일전에 명숙이가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꺾어온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섞여서 꽂혀 있는데 약간 시들기도 하였고 더러는 낙화가 져 하얗게 빨아 덮은 책상보가 색실로 수놓은 것 같이 보인다.
모란봉을 바라보고 떼를 지어 올라가는 꽃놀이꾼들의 흥에 겨워 웅얼대고 지껄이는 남녀의 음성이며 또는 발자국 소리가 길에서 이따금씩 일어나 귀를 스치고 지나가면 뒤미처 좀 조용해진 듯 하자마자 겨우내 꽝꽝 얼어붙었던 대동강의 얼음이 봄을 맞아 녹고 풀려서 이제는 바위 언저리와 돌부리에 그루박 지르듯이 부딪치는 크고 작은 파도 소리가 제법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윤기정(尹基鼎)
1903 ~ 1955.3.1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효봉(曉峰)·효봉산인(曉峰山人).
보인학교 졸업.
월간지 《조선지광》에 《성탄야의 추억》(1921), 《미치는 사람》(1927) 등을 발표
1931년과 1934년에는 두 차례의 카프 검거사건으로 검거되었다가 각각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광복후 송영·한설야(韓雪野)·이기영(李箕永) 주도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소설은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적인 요구를 기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써, 특히 노동자들의 삶의 고통과 착취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있다.
「새살림」(문예시대, 1927.1.)·「밋치는 사람」(조선지광, 1927.6.∼7.)·「딴길을 걷는 사람들」(조선지광, 1927.9.)·「압날을 위하야」(예술운동, 1927.11.)·「의외(意外)」(조선지광, 1928.4.)·「양회굴둑」(조선지광, 1930.6.)·「자화상」(조선문학, 1936.8.)·「사생아」(사해공론, 1936.9.)·「적멸(寂滅)」(조선문단, 1936.10.)·「거부(車夫)」(조광, 1936.11.)「이십원」(풍림, 1936.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