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종
천지간 만물 중에 동물 되기 희한하고, 천만 가지 동물 중에 사람 되기 극난하다. 그같이 희한하고 그같이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이 되어 압제를 받아 자유를 잃게 되면 하늘이 주신 사람의 직분을 지키지 못함이어늘, 하물며 사람 사이에 여자 되어 남자의 압제를 받아 자유를 빼앗기면 어찌 희한코 극난한 동물 중 사람의 권리를 스스로 버림이 아니라 하리요.
여보, 여러분, 나는 옛날 태평시대에 숙부인(淑夫人)까지 바쳤더니 지금은 가련한 민족 중의 한 몸이 된 신설헌이올시다. 오늘 이매경 씨 생신에 청첩을 인하여 왔더니 마침 홍국란 씨와 강금운 씨와 그 외 여러 귀중하신 부인들이 만좌하셨으니 두어 말씀 하오리다.
이전 같으면 오늘 이러한 잔치에 취하고 배부르면 무슨 걱정 있으리까마는, 지금 시대가 어떠한 시대며 우리 민족은 어떠한 민족이오? 내 말이 연설 체격과 흡사하나 우리 규중 여자도 결코 모를 일이 아니올시다.
일본도 삼십 년 전 형편이 우리나라보다 우심하여 혹 천하대세라 혹 자국전도라 말하는 자는, 미친 자라 괴악한 사람이라 지목하고 인류로 치지 않더니, 점점 연설이 크게 열리매 전도하는 교인같이 거리거리 떠드나니 국가 형편이요, 부르나니 민족사세라, 이삼 인 뭇거지라도 술잔을 대하기 전에 소회를 말하고 마시니, 전국 남녀들이 십여 년을 한담도 끊고 잡담도 끊고 언필칭 국가라 민족이라 하더니, 지금 동양에 제일 제이 되는 일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해조(李海朝)
1869. 2. 27. ~ 1927. 5. 11.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 필명으로는 우산거사(牛山居士).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본관은 전주(全州).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출생. 이철용(李哲鎔)의 3남 1녀 중 맏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19세에는 초시에 합격했으며, 25, 6세 무렵에는 대동사문회를 주관했다. 일본어를 독학하여 「철세계」(1908), 「화성돈전」(1908), 「앵속화 제조법」 등을 번역했고, 『제국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보』에 근무했으며, 1908년 대한협회 교육부 사무장, 실업부 평의원, 기호흥학회 평의원,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으로 활약하는 한편 양기탁‧주시경‧이준‧노익형 등과 함께 광무사를 조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59세가 되던 1927년 5월 11일 포천에서 병사했다. 현재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사창동 뒤 낙춘군묘 동쪽에 묘소가 있다. 미완의 한문소설 「잠상태」(1906)를 쓴 이후 신소설 창작에도 임하여 「강명화실기」(1925)에 이르기까지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정치소설적 성향의 토론체 소설 「자유종」(1910), 동학봉기를 소재로 하여 「춘향전」의 모티프를 차용한 「화의 혈」(1912), 미신타파를 주장한 「구마검」(1908), 추리소설적 요소를 지닌 「구의산」(1912)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