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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매

채만식 단편소설

이런 남매(男妹) 하학종 소리가 때앵땡, 아래층에서 울려 올라온다. 사립으로 된 ××학교 육학년 교실이고, 칠판에는 분필로 커다랗게 다섯 자만 "고결한 정신……" 교편을 뒷짐져 들고 교단 위를 오락가락하던 영섭은, 종소리에 바쁘게 교탁 앞에 가 멈춰서면서, 잠깐 그쳤던 말을 다시 이어, 일단 높은 음성으로 "……그러므로 사람이라껏은……" 하고 대강대강 거두잡아 결론을 맺기 시작한다. "어떠한 경우를 당할지라도 그 고결한 정신 즉 높고 깨끗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단 말야……" 뚝 끊고서 아이들을(한 사십 명이나, 모두 고개를 되들고 앉아 선생의 입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휘휘휘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도 잘 알겠지만…… 저 동양의 대성공자께서도 불의이 부차귀는 어아..
이런 남매(男妹)
하학종 소리가 때앵땡, 아래층에서 울려 올라온다.
사립으로 된 ××학교 육학년 교실이고, 칠판에는 분필로 커다랗게 다섯 자만
"고결한 정신……"
교편을 뒷짐져 들고 교단 위를 오락가락하던 영섭은, 종소리에 바쁘게 교탁 앞에 가 멈춰서면서, 잠깐 그쳤던 말을 다시 이어, 일단 높은 음성으로
"……그러므로 사람이라껏은……"
하고 대강대강 거두잡아 결론을 맺기 시작한다.
"어떠한 경우를 당할지라도 그 고결한 정신 즉 높고 깨끗한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단 말야……"
뚝 끊고서 아이들을(한 사십 명이나, 모두 고개를 되들고 앉아 선생의 입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휘휘휘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도 잘 알겠지만…… 저 동양의 대성공자께서도 불의이 부차귀는 어아에 여부운이니라, 응? 그 뜻 알지?…… 의 아닌 그러니까 옳지 않은, 옳지 않은 일을 해서,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고 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으니라…… 이런 말씀을 하셨단 말야……"
또 말을 끊고, 입술에 침을 묻히고 나서(이야기는 도로 장황해 가느라고)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고 귀하게 되고 하는, 큰 불의만을 경계하는 건 아냐! …… 조고만한 일 가령……"
교탁 위로 채점부(採點簿) 옆에 놓인 토막 연필을 집어, 버쩍 쳐들어 보이면서
"……다만, 쓰던 연필 한 토막일지라도, 또는 저기……"
한편 팔을,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가리키면서
"……길에 흘린 동전 한푼이라도…… 그런 사소한 것일지라도…… 옳지 못한 것을 탐을 낸다던지 해서는 결단코 고결한 정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란 말야…… 쌀이 없어서 한 끼 밥을 굶을지언정, 한 끼는 말고 열흘 스무 날을 먹지 못할지언정, 옳지 못한 일, 양심에 부끄러운 일, 남에게 치소를 당하는 일, 그런 일을 해서 배를 채우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해서는 안된단 말야…… 세상에는, 저 거리에를 나가 보면 그와 같이 옳지 못한 일을 해서 ,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능라 금수를 몸에 감고 뻐젓하게 나와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냔 말야…… 그러한 사람들은 비록 좋은 집에 살고 고량진미를 먹을망정, 비단옷을 입어 외양은 좋을망정, 정신으로 말하면 똥개천과 같이 더러운 사람들이란 말야……"
열을 내어 한참 말을 토하는 것이나 이맛살을 잔뜩 찡그림은, 끝의 누이동생 헤렌의 호사스런 양장 맵시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소설가,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 출생.
1918년 중앙고보,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수학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 잠시 근무.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가 초기작이다.
1933년 『조선일보』에 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연재.
1934년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이 있다.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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