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무명초

최서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6 2 0 7 2019-04-07
무명초(無名草) 세상에 나왔다가 겨우 세 살을 먹고 쓰러져 버린 『반도공론』이란 잡지 본사가 종로 네거리 종각 옆에 버티고 서서 이천만 민중의 큰 기대를 받고 있을 때였다. 『반도공론』의 수명은 길지 못하였으나 창간하여서 일 년 동안은 전조선의 인기를 혼자 차지한 듯이 활기를 띠었었다. 『반도공론』이 그렇게 활기를 띠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그 잡지의 사장에 주필까지 겸한 이필현씨가 사상가요 문학자로 당대에 명망이 높았던 것이요 또 하나는 『반도공론』은 여느 잡지와 색채가 달라서 조선 민중의 기대에 등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의 앞에는 아름다운 이상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본주들의 알력으로 한번 경영 곤..

병이 낫거든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57 2 0 22 2019-04-08
⎯「童話[동화]」의 續篇[속편]으로 성하지 못한 몸이라, 업순이는 가을 새벽의 쌀쌀한 바깥 바람기가 소스라치게 싫어, 연해 어깨와 몸을 옴츠린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오고. 가방이, 하찮은 것 같더니(그도 원기가 쇠한 탓이겠지만) 들고 걷기에 무척 힘이 부쳤다. 훤하니 빈 공장 마당엔 이편짝 창고 앞으로, 간밤에 짐을 냈는지 펐는지 미처 쓸지 앉은 채 뽀오얗게 된서리가 앉은 새끼 토막이 낭자히 널려 있다. 그 차가운 서릿발이, 가뜩이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듯 업순이는 얼른 외면을 한다. 외면하는 눈 바로는 저기만치 나란히 선 쌍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뭉클뭉클 소담스럽게 솟아올라, 불현듯 푸근한 공장 안이 생각힌다.

보리방아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36 2 0 21 2019-04-08
남방의 농촌에는 이런 풍경도 있다. 용희(容姬)는 그늘 짙은 뒷마루에 바느질을 차리고 앉아 자지러지게 골몰해서 있다. 샛노란 북포로 아버지의 적삼을 커다랗게 짓고 있는 것이다. 날베가 되어서 여기 말로 하면, 빛은 꾀꼬리같이 고와도 동리가 시끄럽게 버석거린다. 급한 바느질이다. 그러나 거진 다 되어간다. 고의는 벌써 해서 옆에다 개켜놓았고 적삼도 시방 깃을 다는 참이다. 그래도 용희의 손은 바쁘게 놀고 있다. 고운 손결이다. 방아도 찧고 부엌에서 진일도 하지만 마디도 불거지지 아니한 몽실몽실한 손가락들이 끝이 쪽쪽 빠졌다. 손톱이 복사꽃잎같이 곱다. 소곳한 이마와 날씬한 콧등에 땀방울이 잘게 솟았다. 불그레한 볼이 갸름하게 턱으로 굴러내려갔다. 아직 배내털이 송글..

조선역사강화

최남선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06 2 0 59 2019-04-01
歷史[역사]의 始初[시초] 萬事[만사] 萬物[만물]이 생겨난 때가 있고, 變遷[변천]해 온 來歷[내력]이 있읍니다. 世界[세계]의 형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연방 달라지는데, 달라진 새 형편에 맞는 자는 부지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없어지는 것이니, 시방 우리 眼前[안전]에 있는 어수선한 事物[사물]이 총히 이치를 인하여 하나로부터 여럿이 되고, 어설피 된 것으로부터 톡톡해진 것들입니다. 맨 처음 한 가지이던 것이 자꾸 생겨나는 새 형편에 응하여 하나 또 하나 늘어가는 중에 이렇게 야단스러운 世界[세계]가 벌어졌읍니다. 現象[현상]을 進化[진화]라 하고 進化[진화]의 자취를 歷史[역사]라 이릅니다.

문학시평

김남천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1 2 0 81 2019-04-03
문학시평 문화운동 - 예술운동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러한 시평적인 형식으로 취급하는 것은 나의 본의가 아니다. 그러나 장구한 시일간 모든 운동과 떠나서 생활하였고 또한 지금도 그것에 직참(直參)하지 못한 나로서 문화공작에 관한 지도적인 노선에 대하여 운위하는 것은 전혀 오류이며 또한 그렇게 하여서 지시된 노선은 반드시 과오를 품은 것을 불면(不免)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 있어서도 조선의 예술운동에 직참치 않는 동경과 경성간에 계절조(季節鳥)와 같이 왕래하는 서생배(書生輩)들이 제시한 모든 방침에는 그것이 조선의 모든 주객 정세(主客情勢)의 비과학적 평가에 따라서 일본의 이론을 그대로 조선의 이론에 기계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결부하고 이식하는 한도를 훨씬 넘지는 못하였..

통속소설론

임화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02 2 0 45 2019-04-03
통속소설론(通俗小說論) 홀로 소설에 한해서만 아니라, 문제인 것은 현대문학 앞에 전개되는 俗文學[속문학]에의 유혹이다. 前日[전일] 李善熙[이선희]씨와 咸大勳[함대훈]씨의 소설을 비평하면서 金南天[김남천]씨가 이런 의미의 말로 두분을 경계하였고, 전달엔 嚴興燮[엄흥섭]씨의 소설을 비난하는데 역시 白鐵[백철]씨가 동일한 의미의 말을 썼다. 詩壇[시단]의 형상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소설에서 씌어 있는 것과 같은, 즉 통속소설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써 무슨 말을 집어와야 할지, 얼른 이거라 내놓기가 어려운 일이나, 適宜[적의]한대로 글자을 마추어 보면, 詩歌[시가] 대신에 俗歌[속가]란 말을 연상할 수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俗家[속가]란 말은 민요 의미를 가질 수도 ..

인생과 자연

이광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21 2 0 50 2019-04-03
인생(人生)과 자연(自然) 老子[노자]는 사람이 자연에 돌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인생의 모든 불행이 자연에서 떠나서 사람이 꾀를 부리는 데서 온다고 말하였다. 「大道廢有仁義」[대도폐유인의] 라 하여 노자는 인의의 도를 사람의 좀장난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됫박을 깨뜨리고 저울대를 분지러야 사람이 속이기를 그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 옳은 말이다. 제비는 사서 삼경을 안 읽고도 부부와 부자의 도를 지키고 있고 생리 위생학이나 의학이 없어도 곧잘 새끼를 기르고 법률이니 도덕이니 하는 꽤 까다로운 속박이 없건마는 각각 제 생명과 가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또 물과 나무며 짐승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됫박이니 저울이니 없이도 일광과 공기와 물의 배급이 공평하게 되는 것..

조선미술사요

안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492 2 0 56 2019-04-03
조선미술사요(朝鮮美術史要) 나는 미술(美術)에 있어 한가지 기능도 없으며, 또한 공학(工學)에 대한 실기도 상식도 닦은 일이 없다. 그러므로 미술을 감상할 역량을 가지지 아니하여 감히 이 문제를 걸어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학(美學)을 기초하여 여러 사람들이 저술한 동서 미술사를 대조하고 각처에 있는 박물관을 두루 관찰하여 분석적 논구(論究)를 시도하며, 재래 문헌상에 적혀 있는 미술 및 공예품 설명을 탐사하여 보면 적이 해득이 생기고 투리(透理)됨이 있으매 그것으로써 재료를 삼아 이 글을 기초(起草)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을 바르재려 한 동기를 말하면 각각의 학설을 정정코자 함에서 나온 것이다. 외국 학자들이 조선미술에 대하여 너무 과찬(過讚)한 일도 있으며,..

가을

지하련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4 2 0 24 2019-04-05
책 속으로 서쪽으로 티인 창엔 두꺼운 카 ─ 텐을 내려첫는 데도 어느 틈으론지 쨍쨍한 가을 볕살이 테불 우이로 작다구니를 긋고는 바둘바둘 사물거린다. 분명 가을인 게, 손을 마조 잡고 부벼 봐도, 얼굴을 쓰담아 봐도, 어째 보스송하고 매낀한 것이 제법 상글한 기분이고, 또 남쪽 창가ㅅ으로 가서 밖 앝을 내다 볼나치면, 전후좌우로 높이 고여올린 삘딩 우마다 푸르게 아삼거리는 하눌이 무척 높고 해사하다. 오후 여섯 시다. 사내에서 일 잘하기로 유명한 강군이 참다 못해 손가방을 챙긴다. 「뒤에 나오시겠서요?」 「먼저 갑시다.」 뒤를 이어 김군도 따라 일어셨다. 마지막으로 여사원 은히가 나간후 실내는 한층 더 호젔하다. 석재는 이제 막 강군의「난 먼저 갑니다. ..

거목이 넘어질 때

김동인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92 2 0 4 2019-04-05
거목(巨木)이 넘어질 때 "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 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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