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의 농촌에는 이런 풍경도 있다.
용희(容姬)는 그늘 짙은 뒷마루에 바느질을 차리고 앉아 자지러지게 골몰해서 있다.
샛노란 북포로 아버지의 적삼을 커다랗게 짓고 있는 것이다. 날베가 되어서 여기 말로 하면, 빛은 꾀꼬리같이 고와도 동리가 시끄럽게 버석거린다.
급한 바느질이다. 그러나 거진 다 되어간다. 고의는 벌써 해서 옆에다 개켜놓았고 적삼도 시방 깃을 다는 참이다. 그래도 용희의 손은 바쁘게 놀고 있다.
고운 손결이다. 방아도 찧고 부엌에서 진일도 하지만 마디도 불거지지 아니한 몽실몽실한 손가락들이 끝이 쪽쪽 빠졌다.
손톱이 복사꽃잎같이 곱다. 소곳한 이마와 날씬한 콧등에 땀방울이 잘게 솟았다. 불그레한 볼이 갸름하게 턱으로 굴러내려갔다. 아직 배내털이 송글송글하다.
내리깔고 있는 눈이 그래서 눈초리가 더 올라가 보인다. 봉의 눈.
땋아내린 머리채가 마루에 닿고도 남았다.
기름기 없는 머리칼이 몇 개 이마로 처져 가끔 손질을 시키곤 한다.
용희는 실이 다된 바늘을 떼어가지고 실패를 찾다가 문득 숨을 호 내쉬면서 고개를 들고 잠시 우두커니 생각을 한다.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소설가,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 출생.
1918년 중앙고보,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수학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 잠시 근무.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가 초기작이다.
1933년 『조선일보』에 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연재.
1934년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이 있다.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