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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이 넘어질 때

김동인 단편소설

거목(巨木)이 넘어질 때 "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 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웃 나라 신라가 자기 혼자의 힘..
거목(巨木)이 넘어질 때

"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 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웃 나라 신라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백제와 겨룰 수가 없으므로 비열하게도 당나라 군사까지 청하여 들여서 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 처음 한동안은 용케 당하기는 하였지만 원체 군사의 수효가 대상부동이라 드디어 의자왕(義慈王)은 태자와 함께 서울을 피해서 북비(北鄙)로 도망하였다.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수학.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
1919년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0년 부터「광염소나타」, 「광화사」,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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