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역사]의 始初[시초] 萬事[만사] 萬物[만물]이 생겨난 때가 있고, 變遷[변천]해 온 來歷[내력]이 있읍니다. 世界[세계]의 형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연방 달라지는데, 달라진 새 형편에 맞는 자는 부지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없어지는 것이니, 시방 우리 眼前[안전]에 있는 어수선한 事物[사물]이 총히 이치를 인하여 하나로부터 여럿이 되고, 어설피 된 것으로부터 톡톡해진 것들입니다. 맨 처음 한 가지이던 것이 자꾸 생겨나는 새 형편에 응하여 하나 또 하나 늘어가는 중에 이렇게 야단스러운 世界[세계]가 벌어졌읍니다. 現象[현상]을 進化[진화]라 하고 進化[진화]의 자취를 歷史[역사]라 이릅니다.
최남선
(崔南善)
1890년 4월 26일 ~ 1957년 10월 10일
문인·언론인·사학자·친일반민족행위자.
1890년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호는 육당(六堂),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육(公六).
1902년 경성학당에서 수학, 1904년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 중퇴.
1906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입학하였다.
1906년 신문관(新文館)을 설립.
1908년 11월 잡지 『소년(少年)』을 출판하였다.
1910년 3월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에 근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하였다.
1912년 『붉은 저고리』, 1913년 『아이들 보기』, 1914년 『청춘』 등의 잡지를 발행.
1919년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1921년 10월 출옥하였고, 1922년 주간지 『동명』을 발행하였고 1924년에는 『시대일보』를 창간하였다
1926년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과 『백팔번뇌(百八煩惱)』,『심춘순례(尋春巡禮)』 발표.
1927년 『백두산근참기(白頭山勤參記)』, 1928년 『금강예찬(金剛禮讚)』을 발표하였다.
1936년 6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1937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조선 문화의 당면과제」를 게재하였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기고활동 지속하였다.
1957년 10월 10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