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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자연

이광수의 수필

인생(人生)과 자연(自然) 老子[노자]는 사람이 자연에 돌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인생의 모든 불행이 자연에서 떠나서 사람이 꾀를 부리는 데서 온다고 말하였다. 「大道廢有仁義」[대도폐유인의] 라 하여 노자는 인의의 도를 사람의 좀장난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됫박을 깨뜨리고 저울대를 분지러야 사람이 속이기를 그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 옳은 말이다. 제비는 사서 삼경을 안 읽고도 부부와 부자의 도를 지키고 있고 생리 위생학이나 의학이 없어도 곧잘 새끼를 기르고 법률이니 도덕이니 하는 꽤 까다로운 속박이 없건마는 각각 제 생명과 가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또 물과 나무며 짐승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됫박이니 저울이니 없이도 일광과 공기와 물의 배급이 공평하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 시대의 우리 조상도..
인생(人生)과 자연(自然)

老子[노자]는 사람이 자연에 돌아가야 할 것을 말하고 인생의 모든 불행이 자연에서 떠나서 사람이 꾀를 부리는 데서 온다고 말하였다.
「大道廢有仁義」[대도폐유인의]
라 하여 노자는 인의의 도를 사람의 좀장난이라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됫박을 깨뜨리고 저울대를 분지러야 사람이 속이기를 그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 옳은 말이다. 제비는 사서 삼경을 안 읽고도 부부와 부자의 도를 지키고 있고 생리 위생학이나 의학이 없어도 곧잘 새끼를 기르고 법률이니 도덕이니 하는 꽤 까다로운 속박이 없건마는 각각 제 생명과 가족을 보존하는 것이다.
또 물과 나무며 짐승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됫박이니 저울이니 없이도 일광과 공기와 물의 배급이 공평하게 되는 것이다. 에덴 동산 시대의 우리 조상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때에는 옷도 집도 나라도

이광수(李光洙)
1892년 2월 1일 ~ 1950년 10월 25일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였다.
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1906년 3월 다이세중학[大城中學]에 입학.
190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백금학보(白金學報)』 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1910년 『소년』에 신체시 「우리 영웅」을 발표하였고,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에 평론 「문학의 가치」와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였다.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 생활,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다
1915년 9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하였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 등의 단편 소설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1917년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으나 1918년 폐병이 재발하였다.
1921년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에「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1924년 「재생」, 1927년 「마의태자」, 1928년 「단종애사」, 1930년 「혁명가의 아내」, 1931년 「이순신」, 1932년 「흙」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安昌浩 )와 함께 투옥, 1938년 11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1947년 5월 『도산 안창호』, 6월 『꿈』을 출간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8월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7월 납북되었다가 10월 25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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