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16

춘원연구

김동인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0 2 0 24 2019-04-03
춘원연구(春園硏究) 우리의 過去[과거] 우리는 과거에 있어서 자랑할 만한 국가를 역사적으로 가져 보지 못했다. 三國鼎立[삼국정립]의 이전 시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우리의 祖先[조선]의 비참한 역사는 시작되었다. 북으로는 唐[당]이며 오랑캐들의 끊임없는 침노와 남으로는 왜의 건드림을 받으면서 안으로는 삼국 서로 끼리끼리의 싸움의 계속- 한때도 편안히 베개를 높이하고 잠을 자 본 일이 없었다. 오늘날 서로 뭉쳐져서 이천만이라는 수를 이룬 조선 민족이라는 것은 삼국시대에 있어서는 오륙 개에 나누어진 적국이었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지한 기록으로 상고하건대 삼국 분립과 삼한의 이전에는 한 뭉치에 뭉쳐진 민족이었다. 그것..

거룩한 이의 죽음

이광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1 2 0 32 2019-04-05
거룩한 이의 죽음 깍깍 하는 장독대 모퉁이 배나무에 앉아 우는 까치 소리에 깜짝 놀란 듯이 한 손으로 북을 들고 한 손으로 바디집을 잡은 대로 창 중간에나 내려간 볕을 보고 김씨는, 『벌써 저녁때가 되었군!』 하며 멀거니 가늘게 된 도투마리를 보더니, 말코를 끄르고 베틀에서 내려온다. 『아직도 열 자나 남았겠는데.』 하고, 혼잣말로, 『저녁이나 지어 먹고 또 짜지.』 하며, 마루에 나온다. 마당에는 대한 찬바람이 뒷산에 쌓인 마른 눈 가루를 날려다가 곱닿게 뿌려 놓았다. 김씨는 마루 끝에 서서 눈을 감고 공손히 치마 앞에 손을 읍하면서, 『하느님, 우리 선생님을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도인을 도와 주시옵소서. 세월이 하도 분분하오니, 하느님께서 도와 ..

개살구

이효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16 2 0 9 2019-04-05
개살구 서울집을 항용 살구나뭇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집 뒤를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서 있는 까닭인데 오대조서부터 내려온다는 그 인연 있는 고목을 건사할 겸 집은 집이언만 결과로 보면 대대로 내려오는 무준한 그 살구나무가 도리어 그 아래의 집을 아늑하게 막아 주고 싸주는 셈이 되었다. 동리에서 제일 먼저 꽃피는 것도 그 살구나무여서 한참 제철이면 찬란한 꽃송이와 향기 속에 온통 집은 묻혀 무르녹은 꿈을 싸주는 듯도 하지만 잎이 피고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집은 더한층 그 속에 묻혀 버려서 밖에서는 도저히 집안을 엿볼 수 없는 형세가 되었다. 살구나뭇집이라도 결국은 하늘 아래 집이니 그 속에 살림살이가 있을 것은 다 같은 이치나 그 살림살이가 어떠한 것이며 그 속에서는..

강선달

채만식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09 2 0 15 2019-04-05
아들 삼준(三俊)은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조반 수저를 놓으면서 이내 일어서, 기름 묻은 작업복 저고리를 떼어 입고, 아낙은 벤또 싼 보자기를 마침 들려주고 한다. 아랫목에서, 세살박이 손자놈을 안고 앉아 밥을 떠넣어주고 있던 강선달이, 아들의 낯꽃을 보고 보고 하다, 짐짓 지날말처럼 묻는다. "오널두 늦게 나오냐?" 악센트하며 김만경(金萬頃) 그 등지 농민의, 알짜 전라도(全羅道) 사투리다. "네에……" 삼준은 얼굴과 대답 소리가 모호하면서, 무얼 딴 생각을 하느라고 우두커니 한눈을 팔고 섰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하기는 하려면서도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하도록 덤덤히 섰기만 한다. "오늘일랑 이노고리가 있드래두, 직공들끼리 하게 하구서, 일찍 나오시우?" 보다..

관동팔경답파기

김상용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35 2 0 42 2019-04-03
관동팔경답파기(關東八景踏破記) 우리는 우연한 기회로 자연의 품을 찾아 그 속에 묻히고자 이 길을 떠나게 된 것인 만큼 다른 어른들과 같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詩囊[시낭]을 단단히 채우고 노래 근이나 실컷 불러 보자는 고답적 의미를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길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성의와 준비는 너무 적습니다. 혹 성의와 준비가 넉넉하다 해도 제법 경치를 보고 경치에 합당한 감흥을 느끼고 그 느낀 감흥을 제법 똑똑한 시로 짓고 노래로 부르기에는 너무 저희들의 식견과 재질이 부족합니다. 너무 천식이요, 鈍覺[둔각]이요, 俗輩[속배]입니다. 그러나 워낙 소리가 크면 귀먹어리도 귀를 돌리고 가시가 길면 발바닥도 따끔하는 일이 있지 않아요. 이 셈으로 이런 淺見[천견]..

갈등

최서해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33 2 0 6 2019-04-05
책 속으로 봄날같이 따스하고 털자리같이 푸근한 기분을 주던 이른 겨울 어떤 날 오후이었다.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나간 어멈의 엽서를 받았다. 이날 오후에 사에서 나오니 문간에 배달부가 금방 뿌리고 간 듯한 편지 석장이 놓였는데 두 장은 봉서이었고 한 장은 엽서이었다. 봉서 중 한 장은 동경 있는 어떤 친구의 글씨였고 한 장은 내 손을 거쳐서 어떤 친구에게 전하라는 가서(家書)이었다. 나머지 엽서 한 장은 내 눈에 대단히 서투른 글씨였다. 수인란에 ‘경성 화동 백 번지 박춘식씨(京城花洞百番地朴春植氏)’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 쓴 것을 보아서는 내게 온 것이 분명한데 끝이 무딘 모필에 잘 갈지도 않은 수묵을 찍어서 겨우 성자(成字)한 글씨는 보도록새 서툴었다. 나,..

가실

이광수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43 2 0 11 2019-04-05
가실(嘉實) 때는 김 유신이 한창 들날리던 신라 말이다. 가을 볕이 째듯이 비치인 마당에는 벼 낟가리, 콩 낟가리, 모밀 낟가리들이 우뚝우뚝 섰다. 마당 한쪽에는 겨우내 때일 통나무더미가 있다. 그 나무더미 밑에 어떤 열 예닐곱살 된 어여쁘고도 튼튼한 처녀가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남쪽 한길을 바라보고 울고 있다. 이때에 어떤 젊은 농군 하나이 큰 도끼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오다가, 처녀가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우뚝 서며, 『아기, 왜 울어요?』 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처녀는 깜짝 놀라는 듯이 한길을 바라보던 눈물 고인 눈으로 그 젊은 농군을 쳐다보고 가만히 일어나며, 『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르신대요.』 하고 치마 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며 우는 양을 감추려는 듯..

가상의 불량소녀

이익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81 2 0 13 2019-04-05
책 속으로 병주(丙周)는 오늘 밤에도 사람의 물결에 휩싸여 창경원 문 안으로 들어섰다. 비 개인 뒤의 창경원 안은 깨끗하였다. 먼지를 먹으러 오는지, 꽃구경을 오는지 까닭을 알 수 없을 만큼 번잡하던 창경원 안의 사람도 깨끗하여 보였다. 속취(俗趣)와 진애에 젖고 물들었던 꽃과 불은 오늘 저녁만은 꽃다웠고 불다웠다. 병주는 지는 꽃잎이 서늘한 바람에 약간 휘날리는 꽃 밑으로 식물원 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었다. 구경꾼은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대개는 새 얼굴이었다. 그는 야앵(夜櫻)이 열린 뒤로 일주일을 두고 하룻밤도 빠지는 일 없이 저녁밥만 먹으면 발이 이곳으로 저절로 놓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이 며칠 동안의 값 헐한 향락이었다. 쓸쓸한 집에 들어 있어서 쓸데없는 ..

거울을 꺼리는 사나이

윤기정 | 토지 | 1,000원 구매
0 0 277 2 0 21 2019-04-05
거울을 꺼리는 사나이 용봉이는 며칠 전부터 집에서 돈 오기를 고대고대 하던 것이 오늘에야 간신히 왔다. 그 전에는 그렇게 신고를 하지 않고 선뜩선뜩 보내 주더니만 이즈막은 노루 꼬리만 한 벌이였으나 그나마 그만 두었다니까 벌이 할 적보다 적게 청구하더라도 여간 힘을 끼는게 아니다. 아마 아버지와 형의 생각에 ‘벌이도 못하는 녀석이 돈만 쓰나’하고 밉쌀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다른 때 같으면 돈 올 듯한 날짜가 약간 어그러진대도 그다지 조바심이 나도록 초조해 하지 않았으나 이번만은 전에 없이 돈 오기를 목을 늘여 기다렸던 것이다. 참으로 얼굴이 흉하게 생겨 시골집에 있을 적이나 서울로 올라와서나 추남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높은 용봉이가 일금 백원여를 버젓하게 자기 집에다..

누이의 집

이무영 | 토지 | 1,000원 구매
0 0 368 2 0 23 2019-04-07
S 형, 형의 글을 받고 역시 사람이란 물과 같은가보다 했소이다. 그릇에 담아서 형태가 변하는 점에서! 신문이나 잡지 편집자에게는 양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느니라고 언젠가 형의 논문에 오자가 여남은 개나 났던 것을 예로 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분개를 하고, 현대 조선의 인쇄술이나 현재 우리네 언론기관의 기구로는 그것이 거의 절대일 정도로 불가능하다고 변명을 하니까, 그럴진대 맹세코 그런 기관에 직을 갖지 않으니만 같지 못하다, 그런 것을 알고서도 몇 푼의 월급을 위해서 즐기어 파렴치한 직업을 가짐은 경멸하기에 족하지 않느냐, 이렇게 분개하던 형이 그때보다 별로 나아지지도 못한 잡지사에 직을 구한 것은 아우에게는 한 경이였거니와, 그보다도 아우를 놀라킨 것은 같은 학자들 중..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kr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