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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답파기

김상용의 관동팔경답파기

관동팔경답파기(關東八景踏破記) 우리는 우연한 기회로 자연의 품을 찾아 그 속에 묻히고자 이 길을 떠나게 된 것인 만큼 다른 어른들과 같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詩囊[시낭]을 단단히 채우고 노래 근이나 실컷 불러 보자는 고답적 의미를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길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성의와 준비는 너무 적습니다. 혹 성의와 준비가 넉넉하다 해도 제법 경치를 보고 경치에 합당한 감흥을 느끼고 그 느낀 감흥을 제법 똑똑한 시로 짓고 노래로 부르기에는 너무 저희들의 식견과 재질이 부족합니다. 너무 천식이요, 鈍覺[둔각]이요, 俗輩[속배]입니다. 그러나 워낙 소리가 크면 귀먹어리도 귀를 돌리고 가시가 길면 발바닥도 따끔하는 일이 있지 않아요. 이 셈으로 이런 淺見[천견]에도 한두 가지 알아지는 것, 이런 ..
관동팔경답파기(關東八景踏破記)
우리는 우연한 기회로 자연의 품을 찾아 그 속에 묻히고자 이 길을 떠나게 된 것인 만큼 다른 어른들과 같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 詩囊[시낭]을 단단히 채우고 노래 근이나 실컷 불러 보자는 고답적 의미를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길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성의와 준비는 너무 적습니다. 혹 성의와 준비가 넉넉하다 해도 제법 경치를 보고 경치에 합당한 감흥을 느끼고 그 느낀 감흥을 제법 똑똑한 시로 짓고 노래로 부르기에는 너무 저희들의 식견과 재질이 부족합니다. 너무 천식이요, 鈍覺[둔각]이요, 俗輩[속배]입니다.
그러나 워낙 소리가 크면 귀먹어리도 귀를 돌리고 가시가 길면 발바닥도 따끔하는 일이 있지 않아요. 이 셈으로 이런 淺見[천견]에도 한두 가지 알아지는 것, 이런 둔감에도 어떤 때는 혹 가다가 느껴지는 것, 이런 속안에도 혹 띄우는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필자가 이번 이 길의 대강 노정을 부탁하고 거리 거리의 풍물을 그리고, 그리고 때때의 단상을 적어보려 하는 것이 오직 이 예외, 이 기적, 이 비약을 바라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를 따라 읽어가시노라면 필자 딴은 봉황이나 호랑이를 그린 셈인데 독자 여러분께는 닭이나 고양이로 보이게 될 때만 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聖域神境[성역신경]에 대한 여러 어른의 선입감을 더럽혀 드릴 적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닭으론 보인다고 또는 고양이로 그려졌다고 결코 봉황이 봉황 아닌 까닭이 되고 호랑이가 호랑이 못되는 고양이될 까닭이 만무합니다. 필자의 감흥이 적고 窮愁[궁수]가 졸하다고 관동팔경이 어떠할 리야 있겠어요.
김상용
1902년 8월 27일 ~ 1951년 6월 22일
시인, 영문학자, 교육자
1902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했다. 호는 월파(月波)
191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1921년 보성(普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졸업 후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포(E. A. Poe)의 「애너벨리」(『신생(新生)』 27, 1931.1), 키츠(J. Keats)의 「희람고옹부(希臘古甕賦)」(『신생』 31, 1931.5) 등의 외국문학을 번역·소개했다.
1933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1938년 「남으로 창을 내겠오」를 수록한 시집 『망향(望鄕)』을 출판했다.
1939년 10월 '국민문학 건설과 내선일체 구현'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선문인협회의 발기인, 1941년 9월에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50년 수필집 『무하선생방랑기(無何先生放浪記)』를 간행했고, 코리아타임즈사의 초대 사장을 역임했다.
1951년 6월 22일 부산에서 식중독으로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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