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병주(丙周)는 오늘 밤에도 사람의 물결에 휩싸여 창경원 문 안으로 들어섰다. 비 개인 뒤의 창경원 안은 깨끗하였다. 먼지를 먹으러 오는지, 꽃구경을 오는지 까닭을 알 수 없을 만큼 번잡하던 창경원 안의 사람도 깨끗하여 보였다. 속취(俗趣)와 진애에 젖고 물들었던 꽃과 불은 오늘 저녁만은 꽃다웠고 불다웠다. 병주는 지는 꽃잎이 서늘한 바람에 약간 휘날리는 꽃 밑으로 식물원 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었다.
구경꾼은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대개는 새 얼굴이었다. 그는 야앵(夜櫻)이 열린 뒤로 일주일을 두고 하룻밤도 빠지는 일 없이 저녁밥만 먹으면 발이 이곳으로 저절로 놓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이 며칠 동안의 값 헐한 향락이었다. 쓸쓸한 집에 들어 있어서 쓸데없는 궁리만 하는 것보다, 이곳으로 와서 꽃구경, 불구경,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었다. 어떠한 밤이면 자기 집을 나서면서도 자기를 웃었으나, 가는 발을 멈추어 다른 곳으로 돌이킬 만한 아무 유혹도 그는 마음에 가지지 못하였다.
이익상(李益相)
1895년 5월 12일 ~ 1935년 4월 19일
소설가,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전라북도 전주 출생. 호는 성해(星海).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 1922년 니혼대학 사회과를 졸업.
1920년 『호남신문』 사회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개벽』 으로 문필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 『백조』의 동인 김기진(金基鎭)·박영희(朴英熙) 등과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단체를 만들었다.
1924년부터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냈다.
1926년 1월 KAPF의 기관지 『문예운동』을 창간하는 데 앞장섰다.
「어촌」·「젊은 교사」·「흙의 세례」·「길 잃은 범선(帆船)」·「짓밟힌 진주」·「쫓기어가는 사람들」·「광란」 등의 단편소설이 대표적이다.
1926년에는 단편집 『흙의 세례』(문예운동사)를 간행하였다.
1935년 4월 19일 동맥경화증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