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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휘트먼 시집

풀잎 휘트먼이 진정 쓰고자 했던 것은 성경의 운율을 이용한 자유시 형식의 미국적인 서사시였다. 1855년 6월말, 휘트먼은 《풀잎》(Leaves of Grass)의 초판을 형제들에게 보였고, 동생 조지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휘트먼은 《풀잎》 초판을 자비로 795부를 발간하였다. 초판은 제목이 없는 12편의 시가 실린 95쪽의 소책자였다. 작가명은 기록되지 않은 대신 사무엘 홀리어(Samuel Hollyer)가 그린 삽화가 게재되었다. 풀잎은 랠프 왈도 에머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에머슨은 휘트먼에게 다섯 페이지에 이르는 칭찬의 편지를 써주었고, 또한 친구들에게도 격찬을 아까지 않았다. 이 에머슨의 평가의 덕분에 《풀잎》 초판이 널리 읽혀져 상당한 관심을 얻었지만, 동..
풀잎
휘트먼이 진정 쓰고자 했던 것은 성경의 운율을 이용한 자유시 형식의 미국적인 서사시였다. 1855년 6월말, 휘트먼은 《풀잎》(Leaves of Grass)의 초판을 형제들에게 보였고, 동생 조지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휘트먼은 《풀잎》 초판을 자비로 795부를 발간하였다. 초판은 제목이 없는 12편의 시가 실린 95쪽의 소책자였다. 작가명은 기록되지 않은 대신 사무엘 홀리어(Samuel Hollyer)가 그린 삽화가 게재되었다. 풀잎은 랠프 왈도 에머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에머슨은 휘트먼에게 다섯 페이지에 이르는 칭찬의 편지를 써주었고, 또한 친구들에게도 격찬을 아까지 않았다. 이 에머슨의 평가의 덕분에 《풀잎》 초판이 널리 읽혀져 상당한 관심을 얻었지만, 동시에 그 외설적인 묘사에 대한 비판도 받게 되었다. 지질학자 존 피터 레슬리(John Peter Lesley)가 에머슨에게 쓴 편지 중에는, 《풀잎》이 “쓰레기 같은, 불경하고, 외설적” ("trashy, profane & obscene")이며, 저자는 “거들먹거리는 멍청이” (a pretentious ass)라고까지 비난을 했다. 1855년 7월 11일, 《풀잎》이 간행된 몇 일후, 휘트먼의 아버지는 6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풀잎》은 초판 발행 후 몇 개월의 사이에 부적절한 성적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인쇄가 끝나고, 제본되고 있던 제2판의 출판을 출판사가 거부하는 사태도 발생했지만, 결국 20편의 시를 새롭게 추가한 제2판이 1856년 8월에 발표되었다. 1860년과 1867년에 개정판, 재판을 거듭하였고 휘트먼의 생애를 통해서 몇 차례 지속적인 개정을 했다. 브론슨 앨콧(Bronson Alcott)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등 일부 저명한 작가는 일부러 휘트먼을 방문할 만큼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하였다.

풀잎 초판 간행 시기의 휘트먼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태에 있었고, 다시 저널리스트로서 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857년 5월부터는 브룩클린의 《데일리 타임즈》(Daily Times)에서 편집자로서 지면을 감수, 서평, 사설을 집필하는 일을 하였다. 1859년에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월터 휘트먼(Walter Whitman , 1819년 5월 31일 ~ 1892년 3월 26일)은 미국의 시인, 수필가·기자였다. 초월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과도기를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에는 두 양상이 모두 흔적으로 남아있다. 미국 문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기며 종종 "자유시의 아버지"[1] 라는 호칭을 듣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풀잎》(Leaves of Grass, 185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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