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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혈

이광수 단편소설

『부인 앉으시오.』 대소는 몸소 손을 들어 예백 부인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황감하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앉사오리까.』 예백의 아내는 이렇게 사양하고 거의 이마가 닿도록 허리 를 굽혔다. 『아니요. 그렇게 사양할 것이 아니요. 늙은이가 그렇게 허 리를 굽히고 서 있으면 나도 앉았기가 거북하지 않소? 예도 좋고 소중하지마는 예가 사람을 위하여서 있는 것이지 사람 이 예를 위하여서 있는 것이 아닌즉 사람이 괴롭도록 예를 숭상하는 것은 옳지 아니한가 하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예백, 내 생각이 어떠하오?』 대소는 매우 유쾌한 듯이 예백을 돌아본다. 예백도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고 서 있다. 대소는 예백이 읍하고 선 모양이 참 점잖고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허 ..
『부인 앉으시오.』

대소는 몸소 손을 들어 예백 부인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황감하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앉사오리까.』

예백의 아내는 이렇게 사양하고 거의 이마가 닿도록 허리 를 굽혔다.

『아니요. 그렇게 사양할 것이 아니요. 늙은이가 그렇게 허 리를 굽히고 서 있으면 나도 앉았기가 거북하지 않소? 예도 좋고 소중하지마는 예가 사람을 위하여서 있는 것이지 사람 이 예를 위하여서 있는 것이 아닌즉 사람이 괴롭도록 예를 숭상하는 것은 옳지 아니한가 하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오.

예백, 내 생각이 어떠하오?』

대소는 매우 유쾌한 듯이 예백을 돌아본다. 예백도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고 서 있다. 대소는 예백이 읍하고 선 모양이 참 점잖고 아름다움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허 연 긴 수염이 읍한 손등에 닿은 것이 그림 같다고 생각하였다.

예백은 대소의 말에 한층 더 허리를 굽혔다가 잠간 고개를 들어 대소를 우러러 보고 다시 숙여 이마를 읍한 손으로 받 치면서, 약깐 떨리는, 심히 웅숭깊은 소리로,

『젛사오되, 동궁마마 지금 하신 말씀은 옳지 아니한가 하 오. 허리를 굽히는 것이나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무릇 예는 몸을 약간 괴롭게 하는 것인가 하오. 편히 눕는 것을 예라 아니하옵고 또 바로 앉는 것을 예라 하옴도 예라는 데는 괴 로움이 좀 끼어야 하는 것인가 하오. 그렇다고 예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예를 위하여서 있는 것은 아니 오나, 또 예가 없으면 사람이 사람이 아니요, 짐승과 다름이 없다 하였소. 높으신 어른이 계시거든 낮은 무리 읍하여 모 심이 예이오라, 지금 동궁마마 앞에 소인의 무리 이렇게 모 시지 아니하면 예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오라, 예 어지럽고 나라를 어찌 바로 다스리오리까. 젛사오되, 동궁마마 아까 내리신 분부는 좇을 수 없는 줄로 아뢰오.』
이광수(李光洙)
1892년 2월 1일 ~ 1950년 10월 25일
문학가·언론인·친일반민족행위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1899년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03년 동학(東學)에 입도하였다.
1905년 8월 일진회(一進會)의 유학생으로 1906년 3월 다이세중학[大城中學]에 입학.
190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3학년에 편입하였다.
『백금학보(白金學報)』 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
1910년 『소년』에 신체시 「우리 영웅」을 발표하였고,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에 평론 「문학의 가치」와 단편소설 「무정」을 발표하였다.
정주 오산학교(五山學校)의 교원 생활, 백혜순(白惠順)과 혼인하였다
1915년 9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고등예과에 편입하였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소년의 비애」·「윤광호」·「방황」 등의 단편 소설을 『청춘』에 발표하였다.
1917년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였으나 1918년 폐병이 재발하였다.
1921년 허영숙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5월 『개벽』에「민족개조론」을 발표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에 1924년 「재생」, 1927년 「마의태자」, 1928년 「단종애사」, 1930년 「혁명가의 아내」, 1931년 「이순신」, 1932년 「흙」 등을 연재하였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安昌浩 )와 함께 투옥, 1938년 11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전향을 선언하였다.
1947년 5월 『도산 안창호』, 6월 『꿈』을 출간하였다.
1949년 12월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8월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7월 납북되었다가 10월 25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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