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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혼

심훈 단편소설

인숙은 방으로 들어와서 넉줄밖에 아니되는 편지사연을 두 번 세 번 읽어보았다. "인제와서 이따위 소리를......" 하고 혼자 부르짖고는 편지를 방바닥에 내어던젔다. 될 수 있는대로 흥분하지 않으려하며 "제자식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구?" "부부관계까지 청산을 할 각오를 하라구?" 하고 입속으로 뇌까리다가 "흥, 마음대로 해보라지" 하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강보밴가 하는 계집과 살지를 못해서 핑계할게 없으니까 멀정한 저의씨를 남의자식이니 책임을 질수가 없다고 하는 심사가 오륙월 장마통에 썩어 문드러진 생선 배바닥같아서 인숙은 그편지에 침을 탁 배았고 싶었다.
인숙은 방으로 들어와서 넉줄밖에 아니되는 편지사연을 두 번 세 번 읽어보았다.

"인제와서 이따위 소리를......"

하고 혼자 부르짖고는 편지를 방바닥에 내어던젔다. 될 수 있는대로 흥분하지 않으려하며

"제자식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구?"

"부부관계까지 청산을 할 각오를 하라구?"

하고 입속으로 뇌까리다가

"흥, 마음대로 해보라지"

하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강보밴가 하는 계집과 살지를 못해서 핑계할게 없으니까 멀정한 저의씨를 남의자식이니 책임을 질수가 없다고 하는 심사가 오륙월 장마통에 썩어 문드러진 생선 배바닥같아서 인숙은 그편지에 침을 탁 배았고 싶었다.
심훈(沈熏)

1901.9.12. ~ 1936.9.16.
소설가·시인·영화인.
본명 심대섭(沈大燮). 본관 청송(靑松).
호는 해풍(海風). 서울 출생.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17년 이해영(李海暎)과 결혼.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퇴학.
1921년항저우(杭州)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집필활동하며 1924년 이해영과 이혼,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였다.
1925년 「장한몽(長恨夢)」에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
1926년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집필·각색·감독으로 제작하였다.
1930년안정옥(安貞玉)과 재혼하였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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