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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이무영 단편소설

“얘들아, 오늘은 좀 어떨 것 같으냐?” 부엌에서 인기척이 나기만 하면 박 과부는 자리 속에서 이렇게 허공을 대고 물어보는 것이 이 봄 이래로 버릇처럼 되어 있다. 어떨 것 같으냐는 것은 물론 날이 좀 끄무레해졌느냐는 뜻이다. 다른 날도 아닌 바로 한식날 시작을 한 객쩍은 비가 이틀이나 줄기차게 쏟아진 이후로는 복이 내일 모레라는데 소나기 한 줄기 않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못자리판에서 이삭이 날 지경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이듬매기다, 피사리다, 매미충이 생겼느니 어쩌니 할 판인데 중답들도 아직 모를 내어볼 염량도 못하고 있다. 밭도 그대로 퍽 묵어자빠졌다. 오이다, 열무다, 목화다, 제철 찾아 심기는 했으나 워낙 내리쪼이기만 하니까 싹이 트다 말고 모두 시들어버린다. “하늘은 방귀두 ..

“얘들아, 오늘은 좀 어떨 것 같으냐?”
부엌에서 인기척이 나기만 하면 박 과부는 자리 속에서 이렇게 허공을 대고 물어보는 것이 이 봄 이래로 버릇처럼 되어 있다.
어떨 것 같으냐는 것은 물론 날이 좀 끄무레해졌느냐는 뜻이다. 다른 날도 아닌 바로 한식날 시작을 한 객쩍은 비가 이틀이나 줄기차게 쏟아진 이후로는 복이 내일 모레라는데 소나기 한 줄기 않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못자리판에서 이삭이 날 지경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이듬매기다, 피사리다, 매미충이 생겼느니 어쩌니 할 판인데 중답들도 아직 모를 내어볼 염량도 못하고 있다.
밭도 그대로 퍽 묵어자빠졌다. 오이다, 열무다, 목화다, 제철 찾아 심기는 했으나 워낙 내리쪼이기만 하니까 싹이 트다 말고 모두 시들어버린다.
“하늘은 방귀두 안 뀌구 오줌두 안 눌라구? 설마 망종까지야 한 보지락 하겠지.”
이무영(李無影)
1908년 1월 14일 ~ 1960년 4월 21일
본명은 이갑룡(李甲龍),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필명은 이무영(李無影)·탄금대인(彈琴臺人)·이산(李山)
1908년 1월 14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1916년 4월 충청북도 중원군 사립 용명학교 입학.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1926년 6월 잡지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달순의 출가」로 등단하였다.
1927년 5월 『의지할 곳 없는 청춘』, 1928년 『폐허의 울음』을 발간.
경성부 삼선소학교 교원과 출판사와 잡지사에 근무.
1931년 『동아일보』 희곡 현상공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되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
경기도 시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60년 4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작품으로 「삼년」, 「세기의 딸」, 『무영농민문학선』, 『소설작법』, 「이순신」, 「B녀의 소묘」, 「노농」, 「팔각정이 있는 집」, 「농부전초」, 『해전소설집』, 「벽화」
「달순의 출가」, 「의지할 곳 없는 청춘」, 「폐허의 울음」,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향가」, 「용답(龍沓)」, 「역전(驛前)」, 「정열의 책」, 「세기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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