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협집이 부엌으로 물을 길어 가지고 들어오매 쇠죽을 쑤던 삼돌이란 머슴이 부지깽이로 불을 헤치면서,
"어젯밤에는 어디 갔었습던교?"
하며, 불밤송이 같은 머리에 왜수건을 질끈 동여 뒤통수에 슬쩍 질러맨 머리를 번쩍 들어 안협집을 훑어본다.
"남 어디 가고 안 가고 님자가 알아 무엇 할 게요?"
안협집은 별 꼴사나운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암상스러운 눈을 흘겨보며 톡 쏴버린다.
조금이라도 염량이 있는 사람 같으면 얼굴빛이라도 변하였을 것 같으나 본시 계집의 궁둥이라면 염치없이 추근추근 쫓아다니며 음흉한 술책을 부리는 삼십이나 가까이 된 노총각 삼돌이는 도리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웃으면서,
"그리 성낼 게야 무엇 있습나? 어젯밤 안쥔 심바람으로 님자 집을 갔었으니깐두루 말이지."
하고 털 벗은 송충이 모양으로 군데군데 꺼칫꺼칫하게 난 수염을 숯검정 묻은 손가락으로 두어 번 쓰다듬었다.
"어젯밤에도 김참봉 아들네 사랑방에서 자고 왔습네그려."
삼돌이는 싱긋 웃는 가운데에도 남의 약점을 쥔 비겁한 즐거움이 나타났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이 망나니 같은 놈……."
하는 말이 입 바깥까지 나왔던 안협집은 꿀꺽 다시 집어삼키면서,
"남 어디 가 자든 말든 상관할 것이 무엇인고!"
하며, 물동이를 이고서 다시 나가려 하니까,
"흥! 두고 보소. 가만 있을 줄 알았다가는……."
"듣기 싫어! 별꼬락서니를 다 보겠네."
나도향
1902년 ~ 1926년
소설가
서울 출생. 본명은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이며, 도향은 호다
1917년 공옥학교, 1919년배재고등보통학교졸업. 해경성의학전문학교 중퇴 후 일본유학. 1920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벙어리 삼룡」, 「물레방아」, 「뽕」, 「환희」,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은화백동화」, 「17원50전」 등의 작품이 있다.
1922년현진건(玄鎭健)·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박종화(朴鍾和)·박영희(朴英熙) 등과 함께 『백조(白潮)』 동인으로 참여하여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에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에 이어 11월부터 장편 「환희(幻戱)」를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한편, 「옛날의 꿈은 창백(蒼白)하더이다」를 발표하였다.
1923년에는 「은화백동화(銀貨白銅貨)」·「17원50전(十七圓五十錢)」·「행랑자식」을,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에는 「벙어리 삼룡(三龍)」·「물레방아」·「뽕」 등을 발표하였다. 1926년 다시 일본에 갔다가 귀국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요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