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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형님

방정환 동화

"우리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이 어렸을 때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이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는데, 죽은 셈치고 있었더니, 그 후로 가끔가끔 꿈을 꿀 때마다 그 형이 호랑이가 되어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울고 있는 것을 본즉, 분명히 너의 형이 산 속에서 호랑이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네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거든 형님이라 부르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었는데, 이제 당신을 뵈오니 꼭 우리 형님 같아서 그럽니다. 그래, 그 동안 이 산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하고 눈물까지 글썽글썽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그것도 모르겠거니와, 낳기도 어디서 낳았는지 어릴 때 일도 도무지 모르겠으므로, 그 사람 말같이 자기가 나무..
"우리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이 어렸을 때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이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는데, 죽은 셈치고 있었더니, 그 후로 가끔가끔 꿈을 꿀 때마다 그 형이 호랑이가 되어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울고 있는 것을 본즉, 분명히 너의 형이 산 속에서 호랑이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네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거든 형님이라 부르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었는데, 이제 당신을 뵈오니 꼭 우리 형님 같아서 그럽니다. 그래, 그 동안 이 산 속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하고 눈물까지 글썽글썽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도 가만히 생각하니, 자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그것도 모르겠거니와, 낳기도 어디서 낳았는지 어릴 때 일도 도무지 모르겠으므로, 그 사람 말같이 자기가 나무꾼의 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어머니를 그렇게 오래 뵙지 못하고 혼자 산속에서 쓸쓸히 지내온 일이 슬프게 생각되어서,

"아이고, 얘야, 그래 어머니께선 지금도 안녕히 계시냐?”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 안녕하시기야 하지만, 날마다 형님 생각을 하고 울고만 계십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어서 집으로 가서 어머님을 뵙시다.”

하고, 나무꾼이 조르니까,

"얘야, 내 마음은 지금 단숨에라도 뛰어가서 어머님을 뵙고, 그 동안 불효한 죄를 빌고 싶다만, 내가 이렇게 호랑이 탈을 쓰고서야 어떻게 갈 수가 있겠느냐……. 내가 가서 뵙지는 못하나마, 한 달에 두 번씩 돼지나 한 마리씩 갖다 줄 터이니, 네가 내 대신 어머님 봉양이나 잘 해 드려라.”
방정환
(方定煥)
(1899년 ~ 1931년)
아동 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본관은 온양(溫陽).
필명은 잔물, 소파(小波), 소파생, SP, SP生, CWP, CW生, 목성(牧星), 북극성(北極星) 등이 있다.
1913년 서울미동초등학교를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에 중퇴.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의 셋째 딸인 손용화 여사와 중매 결혼하였다
한국 최초의 영화 잡지《녹성(綠星)》(1919년)의 편집에도 관여했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1923년 최초로 본격적인 아동문학 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아동문학 활동을 한 기간은 약 10년으로 〈형제별〉·〈가을밤〉·〈귀뚜라미〉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창작보다는 번안작품이 더 많다
1931년 7월 23일, 3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소파전집》·《방정환 아동문학 독본》·《동생을 찾으러》·《소파아동문학전집》 등이 발간되었다.
‘새싹회’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1957년 소파상을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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