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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강경애 단편소설

어둠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오래 깎지 못한 머리카락은 남바위나 쓴 듯이 이마를 덮어 꺼칠꺼칠하게 귀밑까지 흘러내렸으며 땀에 어룽진 옷은 유지같이 싯누래서 몸에 착 달라붙어 뼈마디를 환히 드러내이고 있다. 소매로 나타난 수숫대 같은 팔에 갑자기 뭉퉁하게 달린 손이 지팡이를 힘껏 다궈쥐었다. 금방 뼈마디가 허옇게 나올 것 같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저편 침대 곁에서 소곤소곤 지껄이던 간호부..
어둠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오래 깎지 못한 머리카락은 남바위나 쓴 듯이 이마를 덮어 꺼칠꺼칠하게 귀밑까지 흘러내렸으며 땀에 어룽진 옷은 유지같이 싯누래서 몸에 착 달라붙어 뼈마디를 환히 드러내이고 있다. 소매로 나타난 수숫대 같은 팔에 갑자기 뭉퉁하게 달린 손이 지팡이를 힘껏 다궈쥐었다. 금방 뼈마디가 허옇게 나올 것 같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저편 침대 곁에서 소곤소곤 지껄이던 간호부들은 입을 다물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중에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간호부가 환자를 바라보자 얼굴이 해쓱해서 ‘오빠!’하고 부르렸으나 다시 보니 오빠는 아니었다. 가시로 버티는 듯한 눈을 억지로 내려 떴다. 마룻바닥은 캄캄하였다. 귀가 울고 가슴이 달막거린다. 꼭 오빠였다. 조금도 틀림없는 오빠이었다. 한데 눈 한 번 깜박일 새 그가 제일 싫어하는 무료과의 입원한 환자가 아니었던가. 내가 미쳤나, 소리를 쳤더라면 어쩔 뻔했어, 하고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저러한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셈인가! 이러한 생각이 불쑥 일어나자 그의 조그만 가슴이 화끈 뜨거워진다. 그는 얼른 알코올 십뿌(濕布[습포]:찜질수건)를 가지고 환자의 곁으로 가서 붕대에 손을 대었다. 오빠는 참으로 이런 사람을 위했음인가? 머리가 어찔해지고 손끝이 포들포들 떨린다. 풀리는 붕대에서는 살 썩은 내가 뭉클뭉클 일어난다. 참말 오빠는 사형을 당하였어, 거짓 소리가 아닐까. 손은 환부를 꾹 눌러 누런 고름을 뽑으면서 맘으로는 이리 분주하였다.
강경애(姜敬愛)
1906.4.20 ~ 1943.4.26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 출생
장연(長淵)으로 이주하여 1925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동맹휴학사건으로 퇴학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였으나 1년후 중퇴
양주동과 사귀었으나 파탄후 귀향하여 야학 등 사회활동에 투신한다.
1931년에 결혼하고 간도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며 조선일보 간도지국장 지냈다.
1944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장연에서 작고.
1931. 조선일보에 발표한 「파금(破琴)」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어머니와 딸」같은해에 발표하고 단편소설 「부자」(1934)·「채전(菜田)」(1933)·「지하촌」(1936) 등을 발표했다.
주요작품으로 장편소설 「소금」(1934)·「인간문제」(1934), 단편으로「축구전(蹴球戰)」(1933)·「유무(有無)」(1934)·「모자(母子)」(1935)·「원고료이백원」(1935)·「해고(解雇)」(1935)·「산남(山男)」(1936)·「어둠」(193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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