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유령
어슴푸레한 저녁, 몇 리를 걸어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무인지경인 산골짝 비탈길, 여우의 밥이 다 되어 버린 해골덩이가 똘똘 구르는 무덤 옆, 혹은 비가 축축이 뿌리는 버덩의 다 쓰러져 가는 물레방앗간, 또 혹은 몇백 년이나 묵은 듯한 우중충한 늪가!
거기에는 흔히 도깨비나 귀신이 나타난다 한다. 그럴 것이다. 고요하고, 축축하고, 우중충하고. 그리고 그것이 정칙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런 곳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은 없다. 따라서 그런 것에 관하여서는 아무 지식도 가지지 못하였다. 하나 나는―자랑이 아니라―더 놀라운 유령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문명의 도시인 서울이니 놀랍단 말이다. 나는 그래도 문명을 자랑하는 서울에서 유령을 목격하였다. 거짓말이라구? 아니다. 거짓말도 아니고 환영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이 말하여 '유령'이라는 것을 나는 이 두 눈을 가지고 확실히 보았다.
어떻든 길게 말할 것 없이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알 것이다.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