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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정인택 단편소설

여수(旅愁) 생각하니 김군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두자 길이가 넘는 김군의 유고 뭉치를 내가 맡아 간직한지도 이미 한 해가 넘는 셈이다. 살릴 길 있으면 살려주어도 좋고 불살라버리거나 휴지통에 넣어도 아깝게 생각 안할 터이니 내 생각대로 처치하라고─그것이 김군의 뜻이었노라고 유고 뭉치를 내게 갖다 맡기며 김군의 유족들은 이렇게 전했었다. 그 유고 속에는 김군이 30평생을 정진하여온 문학적 성과가 모조리 들어 있었다. 장편 단편 합하여 창작만이 20여 편, 시가 400자 원고지로 삼사백 매, 그리고 일기, 수필, 감상 나부랭이는 부지기수였다. 나는 게으른 탓도 있으려니와 우선 그 굉장한 양에 압도되어서 감히 읽을 맘을 먹지 못하고 오늘 내일 미루어오는 사이에 김군에겐 대단히 ..
여수(旅愁)
생각하니 김군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두자 길이가 넘는 김군의 유고 뭉치를 내가 맡아 간직한지도 이미 한 해가 넘는 셈이다.
살릴 길 있으면 살려주어도 좋고 불살라버리거나 휴지통에 넣어도 아깝게 생각 안할 터이니 내 생각대로 처치하라고─그것이 김군의 뜻이었노라고 유고 뭉치를 내게 갖다 맡기며 김군의 유족들은 이렇게 전했었다.
그 유고 속에는 김군이 30평생을 정진하여온 문학적 성과가 모조리 들어 있었다. 장편 단편 합하여 창작만이 20여 편, 시가 400자 원고지로 삼사백 매, 그리고 일기, 수필, 감상 나부랭이는 부지기수였다.
나는 게으른 탓도 있으려니와 우선 그 굉장한 양에 압도되어서 감히 읽을 맘을 먹지 못하고 오늘 내일 미루어오는 사이에 김군에겐 대단히 죄송한 말이나 어느덧 그 존재조차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지금부터 한 달포 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벽장 속에서 다시 그 유고 뭉치를 찾아내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여 얼굴을 붉혔다. 죽은 벗의 뜻을 저바림 이보다 심할 수 있으랴. 죽은 벗의 믿음을 배반함 이보다 더 할 수 있으랴. 나는 혼자서 백 번 얼굴을 붉혔다.
정인택
(鄭人澤)
1909년 9월 12일 ~ 1953년
언론인,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1909년 서울에서 출생.
1922년 3월 수하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7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했다.
1928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중퇴했다.
박태원(朴泰遠)·윤태영(尹泰榮)·이상(李箱) 등과 가깝게 지냈다.
『매일신보』와 『문장사』 등에서 기자를 역임했다.
1930년 『매일신보』에 「나그네 두 사람」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1935년『중앙(中央)』에 단편소설 「촉루」를 발표다.
대표적인 소설은 「준동(蠢動)」· 「연연기(戀戀記)」· 「우울증(憂鬱症)」· 「착한 사람들」· 「부상관(枎桑館)의 봄」· 「검은 흙과 흰 얼굴」· 「구역지(區域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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