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부자
하나 남았던 그의 어머니마저 죽어버리자 그대로 먹고 살만하던 살림이 구멍 뚫린 독 속에 부은 물같이 솔솔솔 어느 구멍을 막아야 될지 분별할 틈도 없이 모조리 빠져 달아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어찌된 심판인지 경춘(敬春)이라는 뚜렷한 본 이름이 있으면서도 ‘택부자’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왕 별명을 가지는 판이면 같은 값에 ‘꼴조동이’, ‘생멸치’, ‘뺑보’라는 등 그리 아름답지 못하고 빈상(貧相)인 별명보다는 귀에도 거슬리지 않게 들리고 점잖스럽고 그 위에 복스러운 부자라는 두자까지 붙어 ‘택부자’라고 별명을 가지는 편이 그리 해롭지는 않을 것이건만 웬일인지 불리우는 그 자체인 경춘이는 몹시 듣기 싫어하였다.
동리에서 그래도 학교나 꽤 다니던 젊은 아이들도 ‘택부자’라면 성을 내는 경춘의 성미를 아는 터이라 저희끼리 암호를 가지고 불렀다.
백신애
1908년 5월 19일 - 1939년 6월 25일
경상북도 영천 출생
소설가. 본명은 무잠(武岑).
어려서는 한문과 강의록으로 독학하였고,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다.
영천공립보통학교와 자인공립보통학교(兹仁公立普通學校) 교원으로 근무.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 · 여자청년동맹(女子青年同盟) 등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했다.
192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박계화(朴啓華)라는 필명으로〈나의 어머니〉발표.
1930년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
1932년 귀국한 뒤 결혼후 이혼하였다.
한국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꺼래이〉(1933)와 〈적빈(赤貧)〉(1934)을 발표하며 비극적인 삶의 모습과 애환을 그렸다.
1939년 위장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