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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와 안잠이

윤기정 단편소설

아씨와 안잠이 "여보게 게 있나? 세숫물 좀 떠오게." 여태까지 세상모르고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서라도 그저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을 줄만 안 주인아씨의 포달부리는 듯한 암상스런 음성이 안방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고요하던 이 집의 아침공기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 밥퍼요." 새로 들어온 지 한달 쯤밖에 안 되는 노상 앳된 안잠재기가 밥 푸던 주걱을 옹솥 안에다 그루박채 멈칫하고서 고개를 살짝 들어 부엌 창살을 향하고 소리를 지른다. "떠오고 나선 못 푸나 어서 떠와 잔소리 말고." 먼저보다도 더 한층 독살이 난 째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지간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내 곧 떠 들여가요." 젊은 안잠재기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바로 옹솥 옆에 걸린 그리 크지 않은 가마솥 뚜껑을 밀쳐 연 다음..
아씨와 안잠이
"여보게 게 있나? 세숫물 좀 떠오게."
여태까지 세상모르고 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서라도 그저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을 줄만 안 주인아씨의 포달부리는 듯한 암상스런 음성이 안방에서 벼락같이 일어나 고요하던 이 집의 아침공기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 밥퍼요."
새로 들어온 지 한달 쯤밖에 안 되는 노상 앳된 안잠재기가 밥 푸던 주걱을 옹솥 안에다 그루박채 멈칫하고서 고개를 살짝 들어 부엌 창살을 향하고 소리를 지른다.
"떠오고 나선 못 푸나 어서 떠와 잔소리 말고."
먼저보다도 더 한층 독살이 난 째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지간히 약이 오른 모양이다.
"내 곧 떠 들여가요."
젊은 안잠재기는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바로 옹솥 옆에 걸린 그리 크지 않은 가마솥 뚜껑을 밀쳐 연 다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더운 물을 한바가지 듬뿍 떠가지고 부엌문턱을 넘어설 제 슬며시 골이나
‘해가 일고삼장해 똥구멍을 찌를 때까지 잘 적은 언제고 이렇게 물이 못나게 재촉할 적은 언제고’ 하고 혼자 입 안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윤기정(尹基鼎)

1903 ~ 1955.3.1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효봉(曉峰)·효봉산인(曉峰山人).
보인학교 졸업.
월간지 《조선지광》에 《성탄야의 추억》(1921), 《미치는 사람》(1927) 등을 발표
1931년과 1934년에는 두 차례의 카프 검거사건으로 검거되었다가 각각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광복후 송영·한설야(韓雪野)·이기영(李箕永) 주도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그의 소설은 계급문학운동의 이념적인 요구를 기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써, 특히 노동자들의 삶의 고통과 착취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들이 있다.

「새살림」(문예시대, 1927.1.)·「밋치는 사람」(조선지광, 1927.6.∼7.)·「딴길을 걷는 사람들」(조선지광, 1927.9.)·「압날을 위하야」(예술운동, 1927.11.)·「의외(意外)」(조선지광, 1928.4.)·「양회굴둑」(조선지광, 1930.6.)·「자화상」(조선문학, 1936.8.)·「사생아」(사해공론, 1936.9.)·「적멸(寂滅)」(조선문단, 1936.10.)·「거부(車夫)」(조광, 1936.11.)「이십원」(풍림, 1936.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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