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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의 호동왕자

윤백남 단편소설

순정의 호동왕자(好童王子) 고구려 대무신왕 十五[십오]년. 가을 해가 서편 벌판으로 뉘엿 뉘엿 넘어가려 한다. 바야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고구려의 세력이 한토(漢土)의 낙랑(樂浪)까지도 집어 삼켜서 어제까지도 낙랑의 서울이던 땅이 오늘의 고구려의 一[일]읍으로 되었다. 그로써 읍의 교외 멀리 패수를 굽어 보는 아담한 재릉에 한 개 새로운 무덤이 서 있었다. 고귀한 사람의 무덤인 듯, 그 앞에 아로새긴 돌이며 무덤의 높이가 보통 평민의 무덤은 아니였다. 그리고 이 근처의 무덤이 모두 한풍(漢風)을 띄운데 반하여 이 무덤만은 고구려풍이다. 황혼의 해를 등으로 받고 고요히 누워 있는 이 무덤 위로 깃을 찾아 가는 몇마리의 까마귀가 울며 지나간다. 황혼의 교외. 황혼의 무덤. 고요한 사위였다. ..
순정의 호동왕자(好童王子)

고구려 대무신왕 十五[십오]년.
가을 해가 서편 벌판으로 뉘엿 뉘엿 넘어가려 한다.
바야흐로 하늘을 찌를 듯한 고구려의 세력이 한토(漢土)의 낙랑(樂浪)까지도 집어 삼켜서 어제까지도 낙랑의 서울이던 땅이 오늘의 고구려의 一[일]읍으로 되었다. 그로써 읍의 교외 멀리 패수를 굽어 보는 아담한 재릉에 한 개 새로운 무덤이 서 있었다.
고귀한 사람의 무덤인 듯, 그 앞에 아로새긴 돌이며 무덤의 높이가 보통 평민의 무덤은 아니였다. 그리고 이 근처의 무덤이 모두 한풍(漢風)을 띄운데 반하여 이 무덤만은 고구려풍이다.
황혼의 해를 등으로 받고 고요히 누워 있는 이 무덤 위로 깃을 찾아 가는 몇마리의 까마귀가 울며 지나간다.
황혼의 교외.
황혼의 무덤.
고요한 사위였다.

윤백남(尹白南)
1888∼1954
극작가·소설가·영화감독.
1888년 충남 공주 출생. 본명 윤교중(尹敎重).
경성학당 졸업. 와세다대학 정경과 수학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강사.
매일신보 기자.
1912년 조일재(趙一齋)와 신파극단 문수성(文秀星)을 창단, 배우로 연극활동.
1922년 민중극단(民衆劇團)을 조직.
「등대지기」·「기연(奇緣)」·「제야의 종소리」 등과 번안·번역극 등을 상연했다.
1923년 한국 최초의 극영화인 「월하(月下)의 맹서」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다.
개화기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금융인으로 출발해 언론인·연극인·교육자·문인·영화인·만담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특히 영화계에 선구적 공적을 남겼고 연극인으로서도 초창기에 극단을 주재하고 희곡을 쓰는 등 신파극을 정화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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