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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단총평

박용철의 여류시단총평

여류시단총평(女流詩壇總評) 이런 총평식 글을 쓰는 사람이면 흔히는 조선문학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이고, 조선 말이란 살아가는지 죽어가는지로 모를 형편이고, 여류시단이란 대체 어디있는것이냐 부터 캐들어가는 버릇이지마는, 그것은 다만 평소 가슴에 맺힌 불평의 터짐이라고 할것이오, 나는 목전의 목적으로 보아, 모든 구름을 잠깐 걷어버리고 광명에 찬 앞날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조선의현대여자로서 조선말로 쓰는 시에 대해서 몇마디 비평을 써볼까한다. 본시 비평이라 하는 것이 좋은 문학을 읽는 가운데서 얻은 마음의 경험― 자긔의 질거운 문학적경험을 출발점으로 해서 그 경험을 기술해보기도 하고 그 문학자의 정신의 본질을 밝혀보려고도 하는것이 떳떳한 길이오, 그 비평가에게 있어서 보람도있고 질거운 문학적사업이지마는 조선과..
여류시단총평(女流詩壇總評)
이런 총평식 글을 쓰는 사람이면 흔히는 조선문학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이고, 조선 말이란 살아가는지 죽어가는지로 모를 형편이고, 여류시단이란 대체 어디있는것이냐 부터 캐들어가는 버릇이지마는, 그것은 다만 평소 가슴에 맺힌 불평의 터짐이라고 할것이오, 나는 목전의 목적으로 보아, 모든 구름을 잠깐 걷어버리고 광명에 찬 앞날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조선의현대여자로서 조선말로 쓰는 시에 대해서 몇마디 비평을 써볼까한다.
본시 비평이라 하는 것이 좋은 문학을 읽는 가운데서 얻은 마음의 경험― 자긔의 질거운 문학적경험을 출발점으로 해서 그 경험을 기술해보기도 하고 그 문학자의 정신의 본질을 밝혀보려고도 하는것이 떳떳한 길이오, 그 비평가에게 있어서 보람도있고 질거운 문학적사업이지마는 조선과같이 문학적작품에 훌륭한것이 비교적 없는 나라에서는 비평가가 이러한 내재적(內在的) 비평의 길만 밟고 있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고 학교선생님과같이 이글은 여기가 잘되었다 여기가 잘 못되었다 시상(詩想)의 착안이 잘되었다 못되었다를 논하는것은 조선과같이 민족전체가 작문에대한 기초가 확실히 서지 아니한 나라에서는 한때의 피치못할일는지 모르나 그러한 친절이란 헛되이 수고롭고 마음 괴로운 일인것이다.

박용철(朴龍喆)
1904. 6. 21. ~ 1938. 5. 12.
호 용아(龍兒)
본관은 충주.
전남 광산
아버지 박하준. 어머니 고광고씨의 4남매 중 장남.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후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
1923년 도쿄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후 자퇴.
16세 때 김회숙(金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혼.
1931년 5월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였다.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 친교를 맺고
1930년 『시문학(詩文學)』, 1931년 『문예월간(文藝月刊)』 , 1934년 『문학(文學)』 간행하였다.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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