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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이무영 단편소설

소녀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는 것이 소녀의 기원이었다. 하루에 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왔으면 했다. 그래서 어서 이 달이 가고 새달이 오고, 그 새달이 또 가고 했으면 싶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바람이 앵앵 불어대고 물이 꽝꽝 얼어붙고 했으면 오죽 좋으랴 했다. 그렇다고 소녀가 다른 아이들처럼 썰매를 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얼음을 지치고 싶어서도 아니다. 맞은편 과장 집 딸처럼 하이얀 털외투가 생겨서 그것을 입어지자고 겨울을 그렇게 골똘하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첫째, 소녀는 겨울이 온대도 얼음을 지칠 팔자가 못 된다. 외투는커녕 내복도 없는 신세였다. 옷이야 지금 몸에 걸친 구제품 원피스 하나뿐이다. 또 한 벌 있기는 하여도 어깨받이가 다 나간 역시 구제품 조각이다. 지금 입은 옷을 빨아..
소녀

어서 겨울이 왔으면 하는 것이 소녀의 기원이었다. 하루에 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왔으면 했다. 그래서 어서 이 달이 가고 새달이 오고, 그 새달이 또 가고 했으면 싶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바람이 앵앵 불어대고 물이 꽝꽝 얼어붙고 했으면 오죽 좋으랴 했다.
그렇다고 소녀가 다른 아이들처럼 썰매를 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얼음을 지치고 싶어서도 아니다. 맞은편 과장 집 딸처럼 하이얀 털외투가 생겨서 그것을 입어지자고 겨울을 그렇게 골똘하게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첫째, 소녀는 겨울이 온대도 얼음을 지칠 팔자가 못 된다. 외투는커녕 내복도 없는 신세였다. 옷이야 지금 몸에 걸친 구제품 원피스 하나뿐이다. 또 한 벌 있기는 하여도 어깨받이가 다 나간 역시 구제품 조각이다. 지금 입은 옷을 빨아 입재도 벗고 입을 것이 없어서 짜린내가 나는 것을 그대로 입고 있는 처지다. 날이 으르르해지면 불탄 강아지처럼 달달 떨어야만 할 소녀였다. 내어버린 더운 물도 그대로 쩍쩍 얼어붙는 추위에 밖에서 일을 해야 하고 군불을 때야 하고 얼어붙는 걸레로 집안을 치워야 하는 소녀였다. 소녀는 귀한 집 딸이 아니다. 아니, 귀하고 천하고는 둘째다. 소녀는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저씨요 아주머니네 집이다. 그것도 어떻게 되는 아저씨가 아니다. 구두닦이 아이들이 아무나 보고 부르는 그런 아저씨에 지나지 않는 아저씨였고 아주머니였다. 소녀는 남의 집 더부살이였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네 집에는 아들딸 해서 다섯이나 있지만 이 다섯 아이들보다도 제일 일찍 일어나야 했고 가장 늦게 자야만 하는 처지다. 아니, 아저씨와 아주머니보다도 먼저 일어나야 했고, 또 늦게 자는 수가 많다. 아저씨는 몹시 술을 좋아한다. 아저씨는 통행시간도 없다. 아저씨한테는 늦게 다니어도 좋다는 무슨 증명서가 있었다. 석 장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이무영(李無影)
1908년 1월 14일 ~ 1960년 4월 21일
본명은 이갑룡(李甲龍),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필명은 이무영(李無影)·탄금대인(彈琴臺人)·이산(李山)
1908년 1월 14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1916년 4월 충청북도 중원군 사립 용명학교 입학.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1926년 6월 잡지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달순의 출가」로 등단하였다.
1927년 5월 『의지할 곳 없는 청춘』, 1928년 『폐허의 울음』을 발간.
경성부 삼선소학교 교원과 출판사와 잡지사에 근무.
1931년 『동아일보』 희곡 현상공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되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
경기도 시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60년 4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작품으로 「삼년」, 「세기의 딸」, 『무영농민문학선』, 『소설작법』, 「이순신」, 「B녀의 소묘」, 「노농」, 「팔각정이 있는 집」, 「농부전초」, 『해전소설집』, 「벽화」
「달순의 출가」, 「의지할 곳 없는 청춘」, 「폐허의 울음」,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향가」, 「용답(龍沓)」, 「역전(驛前)」, 「정열의 책」, 「세기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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