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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

이효석 단편소설

수난 아내와 나는 각각 의자의 뒤편 양쪽에 나누어 섰고 유라만이 의자에 걸어앉아 결국 삼각형의 아랫편 정점을 이루었고 세 사람 가운데의 복판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반드시 그가 작고하여 버린 탓도 아니겠지만 이 사진에 나타난 유라의 자태는 그 어디인지 넋을 잃은 듯한 허수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눈에 정기가 없다. 빌딩의 창이 열려 있듯 두 눈은 다만 기계적으로 무르게 열려 있을 뿐이지 생명의 광채가 엷다. 흐린 가을날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약한 광선같이도 애잔하고 하염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부수수한 것은 평소의 그이 치장의 취미라고나 할까. 세 사람이 사진에 나타날 때 한복판의 위치가 불길하다 함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이 말과 유라의 경우와를 합하여 생각할 때 나는 무서운 암합에 마음이 어두워짐을..
수난

아내와 나는 각각 의자의 뒤편 양쪽에 나누어 섰고 유라만이 의자에 걸어앉아 결국 삼각형의 아랫편 정점을 이루었고 세 사람 가운데의 복판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반드시 그가 작고하여 버린 탓도 아니겠지만 이 사진에 나타난 유라의 자태는 그 어디인지 넋을 잃은 듯한 허수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눈에 정기가 없다. 빌딩의 창이 열려 있듯 두 눈은 다만 기계적으로 무르게 열려 있을 뿐이지 생명의 광채가 엷다. 흐린 가을날 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약한 광선같이도 애잔하고 하염없는 것이다. 머리카락이 부수수한 것은 평소의 그이 치장의 취미라고나 할까. 세 사람이 사진에 나타날 때 한복판의 위치가 불길하다 함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이 말과 유라의 경우와를 합하여 생각할 때 나는 무서운 암합에 마음이 어두워짐을 깨닫는 동시에 이 사진을 박을 때에 유라와 아내는 그러한 흉신을 알고서인지 모르고서인지 의자에 앉으라거니 뒤에 서겠다거니 하고 한참 동안이나 귀여운 실내기를 쳤던 것을 생각하면 유라의 박명에 더한층 마음이 아프다. 그는 세 사람에 앞서 마치 세 사람의 악운을 휩쓸어 가지고 간 듯하다. 그가 그렇게 빨리 안 간다 하더라도 세 사람 사이의 평균한 안정은 결코 잃어지지 않았을 것을 ─ 그는 생명을 조금도 염려하고 사랑할 필요는 없을 것을 ─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감상까지 우러러 나와 유라의 짧은 생애가 한없이 애달고 슬퍼진다.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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