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비웃으면서도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은 그 기괴한 습관을 나는 버리지 못하였다. 꿈을 빚어내기에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발명이었던 까닭이다. 두 개의 렌즈를 통하여 들어오는 갈매기빛 거리는 앙상한 생활의 바다가 아니요, 아름다운 꿈의 세상이었다.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만은 귀찮은 현실도 나의 등뒤에 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굳이 도망하여야 할 현실도 아니겠지만 나는 모르는 결에 그 방법을 즐기게 되었다.
비밀은 간단하다. 쌍안경 렌즈에 갈매기빛 채색을 베푼 것이다. 나의 생활의 거의 반은 이 쌍안경과 같이 있다. 우두커니 앉아 궁리에 잠기지 않으면 렌즈를 거리로 향하는 것이 이층에서 보내는 시간의 전부였다. 그 쌍안경의 마술이 뜻밖에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그 기괴한 습관을 한결같이 비웃을 수만도 없다.
"유례가 아닌가."
거리 위를 대중없이 거닐던 렌즈의 방향을 문득 한 곳에 박고 나는 시선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러나 비취이는 것은 안정된 정물이 아니요 움직이는 물화인 까닭에 인물의 걸음을 따라 핀트가 틀어지고 동그란 화폭이 이지러진다. 나사를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초점을 맞추기가 유난스럽게 힘든다.
이효석
1907.2.23 ~ 1942.5.25
호는 가산(可山). 강원도 평창(平昌) 출생.
《메밀꽃 필 무렵》을 쓴 대표적인 단편소설작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활동 시작.
1931년 이경원과 혼인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총독부에 취직.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도 부임하며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
숭실전문학교에 근무하며 10여 편의 단편과 많은 산문을 발표.
「화분(花粉)」(1939)·「벽공무한(碧空無限)」(1940) 등 장편도 이때 집필하였다.
1942년 뇌막염으로 병석에 눕게 되어 36세로 요절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 《상륙》, 《돈》, 《오리온과 능금》, 《화분》, 《산》, 《메밀꽃 필 무렵》, 《장미 병들다》, 《들》, 《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