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야마다 하루오는 실로 이상한 아이였다. 그는 다른 아이들 속에 휩쓸리지 못하고 언제나 그 주위에서 소심하게 어물거리고 있었다. 노상 얻어맞기도 하고 수모를 당했으나 저도 처녀 아이들이나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누가 자빠지기라도 하면 기다리고 있은 듯이 야야하고 떠들어댔다. 그는 사랑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 사랑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보기에 머리숱이 적은 편이고 키가 컸으며 눈은 약간 흰자위가 많아서 좀 기분이 나쁘다. 그는 이 지역에 사는 그 어느 아이보다 옷이 어지러웠으며 벌서 가을이 깊었는데도 아직 해어진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눈은 한층 더 음울하고 회의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자기가 사는 곳을 절대로 대주지 않았다. 그가 걸어오는 방향을 보면 아마 정거장 뒤에 있는 진펄 근처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나는 이렇게 물었다.
김사량 (金史良)
본명 김시창(金時昌)
1914년 3월 3일 - 1950년 9월 17일
1914년 3월 3일 평남 평양 출생.
1931년 평양고보 5학년 때 광주학생운동으로 퇴교당했다.
일본에 건너가 사가고교(佐賀高校)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36. 동인지 《제방(堤防)》에 일어로 된 처녀작 「토성랑」을 발표
1943년 팔로군 조선의용군 기자로 활동하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평안남도 예술연맹 위원장
북조선예술가총연맹 국제문화국 국장
북한 김일성대학 강사
1944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독일어 교사
1950년 원주에서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지기미」, 「칠현금」, 「기자림」, 「산의 신들」, 「천마」, 「무궁일가」 등과
장편소설 「낙조」, 「태백산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