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夫婦)
결혼하던 당년 여름이었읍니다. 다방골 어떤 학생 하숙에서 두어 달이나 지낸 두 내외는 동소문안 어떤 집 사랑채를 세로 얻어 가지고 이사를 하였 읍니다.
단 내외간 살림인데 가난까지 겸하여 놓으니 세간이라고는 잔약한 서방님의 어깨에 올려 놓아도 그리 겨웁지는 않을 만하였읍니다. 그런 세간이건마는 되지도 못한 체면을 보노라고 짐꾼을 불러서 지어 가지고 갔읍니다.
그집 사랑채는 말이 사랑채지 실상은 왼채집이나 다름없었읍니다. 방은 하나이나 간 반이 되고 벽장까지 있으니 그만하면 신혼지초에 신정이 미흡한 젊은 내외의 용슬(容膝)은 넉넉하였읍니다. 부엌은 말로 반 칸이지 사실로는 반의 반 칸이나 되겠으나 다행히 아씨의 몸집이 뚱뚱보가 아니니까 그것도 부족될 것은 없고 툇마루까지 넓적해서 저녁 후에 내외가 나앉아서 낙산위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소근소근 이야기하기에도 십상 알맞았읍니다.
그런데 걱정이 있었
최서해(崔曙海)
1901년 1월 21일 ~ 1932년 7월 9일
함경북도 성진 출생.
본명은 학송(鶴松)이고 호는 서해(曙海).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청춘》, 《학지광》 등을 읽으며 홀로 문학 수업을 하였고, 1924년에 단편 「고국」이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20년대 경향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조선문단》에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작가적 명성을 얻었다.
「박돌의 죽음」, 「기아와 살육」과 같은 문제작을 발표하였다.
1925년 카프(KAPF)가 결성된 뒤에는 박영희의 권유로 가입하여 중심 작가로 활동하였고, 1931년 《매일신보》에서 학예부장을 역임하였다.
최서해의 문학은 빈궁을 소재로 하여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지만 당시 경향문학이 일반적으로 빠져들었던 이데올로기 과잉의 관념적 성향과는 달리, 작가의 생활 체험이 풍부하게 반영된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한 전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