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에 바투 매어달린 전등은 방 주인 병조와 한가지로 잠잠히 방안을 밝히고 있다.
대청마루에 걸린 낡은 괘종이 뚝떡 뚝떡 하며 달아나는 시간을 한 초씩 한 초씩 놓치지 않고 세었다.
큰방에서는 돌아올 시간이 아직도 먼 아들을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영복 어머니의 기침소리가 이따금 콜록콜록 들려나왔다.
바로 집 뒤에 약현(藥峴)마루를 내노라고 왕자(王者)답게 차지하고 있는 천주교당에서는 벌떼 소리 같은 찬송가 소리가 울려나왔다.
자정이 지나지 아니하면 그칠 줄을 모르는 경성역의 요란한 기차 소리들은 여전히 어수선하게 야단을 내떨었다.
그러나 병조는 잠잠히 앉아 철필대만 놀렸다.
그는 벽에다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거침새없이 내뻗고 앉아서 책상-양탄자를 씌웠으면 값 헐한 중국요리집의 요리상으로 쓰기에 꼭 알맞은 형용만 갖춘 책상-위에 얼른 보기에는 흰 테이블 크로스를 덮은 것 같으나 알고 보면 영복이가 기계과에 있는 덕에 가끔 몇장씩 가져오는 널따란 양지―를 펼쳐놓고 철필을 든 손으로 무심하게 글자를 끄적거렸다.
내리긋고 건너서 내리긋고 건너긋고 다시 건너그은 날일(日)변에 내리 삐치고 건너서 내리삐친 밑에 입구(口)를 해서 밝을소(昭)……
채만식(蔡萬植)
1902년 7월 21일 ~ 1950년 6월 11일
소설가,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 출생.
1918년 중앙고보,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수학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여 『별건곤』, 『혜성』, 『제일선』 등의 편집을 맡았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 잠시 근무.
1924년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단편 「불효자식」(1925)과 중편 「과도기」(문학사상, 1973)가 초기작이다.
1933년 『조선일보』에 편 「인형의 집을 찾아서」를 연재.
1934년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독특한 풍자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대표작으로 「치숙」(1938), 「탁류」(1937~1938), 「태평천하」(1938) 등이 있다.
1950년 그곳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