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안 위에 피곤한 손을 한가히 쉬이시는
만하 누님에게 한 구절 애닯은 울음의
노래를 드려 볼까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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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글을 쓰기 전에 우선 누님 누님 누님 하고 눈물이 날 만치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누님을 불러 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한낱 꿈일까요? 꿈이나 같으면 오히려 허무로 돌리어 보내일 얼마간의 위로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것도 꿈이 아닌가 하나이다. 시간을 타고 뒷걸음질친 또렷하고 분명한 현실이었나이다. 저의 일생의 짧은 경로의 한마디를 꾸미고 스러진 또다시 있기 어려운 과거이었나이다.
나도향
(羅稻香)
1902. 3. 30. ~ 1926. 8. 26.
서울 출생. 본명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은 호다.
1917년 공옥학교 졸업,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해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192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21. 배재학보에 「출향」을 발표하면서 문필활동 시작
『신민공론』에 단편 「추억」을 발표했다.
1922년에는 박종화 ‧ 홍사용 ‧ 이상화, 현진건(玄鎭健) 등과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녯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17원 50전」, 「은화」, 「춘성(春星)」「여이발사」,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