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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번반년

김동인 단편소설

벌번반년(罰番半年) 서울 중부 견평방(中部 堅平坊) 지금(1946년 현재)은 거기 서 있는 건물(建物)도 헐리어 없어져서 빈 터만 남았지만, 연전까지는 빈 벽돌집이나마 서 있었고, 그전 잠깐은 화재 뒤의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 임시영업소로 썼고, 그전에는 수십 년간 종로경찰서의 청사(廳舍)로 사용되었고, 또 그전에는‘한성 전기회사’가 있던 곳. 그 곳은 이태조 한양 정도 후에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를 두었던 곳이다. 순군만호부는 태종 이년에 순위부(巡衛府)라 이름을 고치었다가, 삼년에 다시 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라 칭하였다가, 십사년에 의금부(義禁府)라 다시 고친 것으로서, 속칭 왕옥(王獄) 왕부(王府) 금오청(金吾廳) 금부(禁府) 등등으로 불리우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태고 적부터 변함없이 동쪽으..
벌번반년(罰番半年)
서울 중부 견평방(中部 堅平坊)
지금(1946년 현재)은 거기 서 있는 건물(建物)도 헐리어 없어져서 빈 터만 남았지만, 연전까지는 빈 벽돌집이나마 서 있었고, 그전 잠깐은 화재 뒤의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이 임시영업소로 썼고, 그전에는 수십 년간 종로경찰서의 청사(廳舍)로 사용되었고, 또 그전에는‘한성 전기회사’가 있던 곳.
그 곳은 이태조 한양 정도 후에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를 두었던 곳이다. 순군만호부는 태종 이년에 순위부(巡衛府)라 이름을 고치었다가, 삼년에 다시 의용순금사(義勇巡禁司)라 칭하였다가, 십사년에 의금부(義禁府)라 다시 고친 것으로서, 속칭 왕옥(王獄) 왕부(王府) 금오청(金吾廳) 금부(禁府) 등등으로 불리우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태고 적부터 변함없이 동쪽으로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이 날도 여전히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집집의 지붕 위로 솟은 굴뚝에서는 마지막 연기까지도 사라지고 고요한 밤이 이르려 할 때였다.

김동인 (金東仁)
1900. 10. 2. ~ 1951. 1. 5.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1900년 10월 2일 평남 평양 출생.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다미술학교에서 수학.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
1919년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시작.
마음이 옅은 자여」(1919), 「배따라기」(1921), 「목숨」(1921) 등과 같은 작품에서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표방하였다.
1923년에 첫 창작집인 『목숨』을 창조사에서 출간하였고, 『창조』의 후신인 『영대』를 발간하였다.
『영대』 동인으로는 『창조』 동인 외에도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참가하였다. 1925년에는 「명문」, 「감자」, 「시골 황서방」과 같이 자연주의적 작품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0년 부터「광염소나타」, 「광화사」, 「젊은 그들」(1930~1931), 「운현궁의 봄」(1933), 「왕부의 낙조」(1935), 「대수양」(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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