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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전초

이무영 단편소설

"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 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 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이란 말이다.

이무영(李無影)
1908년 1월 14일 ~ 1960년 4월 21일
본명은 이갑룡(李甲龍), 아명은 이용구(李龍九), 필명은 이무영(李無影)·탄금대인(彈琴臺人)·이산(李山)
1908년 1월 14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
1916년 4월 충청북도 중원군 사립 용명학교 입학.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
1926년 6월 잡지 『조선문단』에 단편소설 「달순의 출가」로 등단하였다.
1927년 5월 『의지할 곳 없는 청춘』, 1928년 『폐허의 울음』을 발간.
경성부 삼선소학교 교원과 출판사와 잡지사에 근무.
1931년 『동아일보』 희곡 현상공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되었다.
1935년 5월 동아일보사 학예부 기자가 되어 재직하다가 1939년 7월 퇴사.
경기도 시흥에서 농업에 종사하며 농민문학 창작에 열중하였다.
이무영의 대표작이자 농민소설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제1과 제1장」(1939), 「흙의 노예」(1940)를 발표하였다.
1960년 4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작품으로 「삼년」, 「세기의 딸」, 『무영농민문학선』, 『소설작법』, 「이순신」, 「B녀의 소묘」, 「노농」, 「팔각정이 있는 집」, 「농부전초」, 『해전소설집』, 「벽화」
「달순의 출가」, 「의지할 곳 없는 청춘」, 「폐허의 울음」,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향가」, 「용답(龍沓)」, 「역전(驛前)」, 「정열의 책」, 「세기의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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